사랑에 관한 영화는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사랑 영화를 보는 일은 그리 흔치 않은 경험에 속한다. 우리 나라 영화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사랑에 대해 표현하는 장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영화는유치해진다. 그래서일까. 이광훈 감독의 <패자부활전>은 진행 중인 사랑이 아니라 끝나버린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울러 사랑이 끝장나버린 사람들 끼리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은혜(김희선 분)와 진우(이진우 분)가 사랑을 했다. 민규(장동건)와화영(김시원 분)도 사랑을 했다. 은혜와 진우의 사랑은 깨지고 민규와 화영의 사랑도 깨졌다. 이 두 사랑이 한꺼번에 깨진 것은 진우와 화영이새로이 사랑을 시작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랑은 이렇게 깨지며, 다시 시작하는 사랑 또한 이렇게 시작한다. 진우와 화영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결합하는 일은 늘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은혜와 민규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사건이다. 이들이 결합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광훈의 <패자부활전>은 바로 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일단 아이디어는 독특했다고 할 만 하다. 그러나 문제는 「방자와 향단」이가 결합하는 것 같은 이 패자들의 사랑을 어떻게하면 참신하게 그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고난도 주제가 아닐 수 없다.
<패자부활전>은 진우와 화영의 결합을 시종일관 방해하는 인물로 은혜를표현한다. 아울러 본의 아니게 가세하게 되는 민규를 표현한다. 패자들이승자들을 괴롭히고 질투하다가 어느 순간 패자들 끼리 사랑을 느낀다는 것, 이것이 이광훈이 말하는 패자부활법이다.
그러나, 왜일까. <패자부활전>은 잘 만들어진 드라마 같다는 느낌은 주면서도 잘 만든 영화 같다는 느낌은 주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패자부활전>은 스토리와 장면이 따로따로 놀고 있다. 장면은 영화적인데 스토리는 드라마적이라고나 할까. 드라마적인 요소들이 영화 전체를 제압해 버려 영화적인 것이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감독의 개성보다 시나리오 작가(주찬옥)의 개성이 더 많이 드러나버린 탓이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패자부활전>의 도입부는 상당히 야심적이고 흥미로왔다. 이 때의 김희선은 사랑에 실패하고 질투만 남아 있는 신세대 여성의 역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결함은 바로 이 도입부의 박력을 장면이 계속되면서 점점 잃어버린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도입부가 지나버리면 김희선은 예전의 청순가련형과 그리 다를 것 없는 인물이 되고 신세대 사랑이라는 주제 또한 실종되고, 「패자」끼리 사랑을 하게 되는 예정된 결말을위한 지리한 시간만이 남겨진다.
<패자부활전>의 성공은 「잔인하게 복수하되 좀더 코믹할 것」에 달려 있었는데 잔인하지도 충분히 코믹하지도 못했다. 이광훈 감독은 자신의 영화 <닥터 봉>이 왜 성공했는가를 돌아보야야 할 것이다.
<채명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