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민수용 기술의 활성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은 전쟁초기 제로센(제로戰)전투기라는, 미국 전투기의 성능을 앞서는 전투기를 개발해서 전쟁의 기선을 잡는가 했더니 미국은 곧바로 「웅가」전투기를 개발 생산함으로써 이에 맞섰다. 전쟁이 확대되면서 일본은 제로센전투기의 생산과 품질이 양산을 뒤쫓지 못해, 결국은 세계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제로센전투기는 빛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전을 맞이한 것이다. 미국은 가전, 자동차 같은 민수용 시장에서 익힌 양산기술을 활용, 웅가전투기의 양산품질을 유지했지만 일본은 민수용 분야의 기술이 불충분하고 품질의 안정을 확보하지 못해 양산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연구개발에서 군수용기술 우위형이 반드시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반도체 개발 초기단계에 바이폴러형과 상호보완성금속산화막반도체(CMOS)형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둘 것인가 선택의 문제가 있었다. 여기서 미국은 바이폴러형을 취하고 일본은 CMOS형 쪽을 택했다. 그것은 미국의 반도체개발이 군수용에 주안을 두고 있었으므로 고가이더라도 내환경성(耐環境性)이 우수하고 연산속도가 빨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전자계산기용으로 반도체를 생각했기 때문에 속도가 다소 늦고 신뢰성에 문제가 있더라도 값이 싸고 저소비전력형의 반도체가 필요했으므로 처음부터 CMOS형을 택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민간기업의 격렬한 개발경쟁으로 연산속도도 빨라지고 신뢰성도 개선돼 바이폴러형에 뒤지지 않는 성능의 CMOS형 반도체가 오늘날 반도체의 주류가 된 것이다. 과거의 모든 첨단기술은 군수용기술에서 스핀아웃돼 그것이 민수용 기술로 정착됐다. 미국 같은 나라는 군수용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하면 그것을 곧 민수용 기술로 전환, 양산기술을 확보해 산업사이클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뒤바뀌어 이제 민수용 기술에서 스핀온되는 것이 군수용기술이 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1992년 클린턴 대통령후보가 선거기간 중 배포한, 정책에 관한 메인테마를 설명한 자료 「The Technology:The Engine of Economic Growth」 중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걸프만 전쟁에서 활약한 패트리어트에 조립된 MPU는 3세대 전의 것이다. 미국은 이제까지 군수용기술에서만 최첨단을 유지해 왔고 이것만 확실하게 하면 언젠가는 민수용으로 파급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새로운 기술은 오히려 민수용 시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국 경제의 경쟁력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민수용 기술의 활성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외에도 17페이지의 자료 속에는 11개 부문에서 일본과의 비교가 등장하는데, 가령 일본의 경제규모는 미국의 60% 수준이지만 민간설비 투자규모는 미국이 5천5백억 달러인 데 비해 일본은 6천6백20억 달러, 민간연구개발비는 미국이 GNP 대비 1.9%인 데 비해 일본은 3%이다. 연구개발 성과의 하나인 특허에 있어서는 미국 내의 특허 50%는 해외기업이 받고 있는데, 그 톱10 가운데 5개사가 일본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하나 예를 들어 미국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산업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경제 부흥을 위해 그간 정부주도의 군수용기술 중심에서 벗어나 민간주도의 민수용기술 활성화에 주력하겠다는 클린턴 대통령후보의 뜻이 자료에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오늘의 미국경제 회복은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시대부터 불붙기 시작한 정부규제의 철폐와 신규기업의 진출을 촉진하는 정책에 의해서였다. 이로 인해 기업간의 경쟁은 격렬해지고 기업 합병인수(M&A)도 빈발하는 반면 기업의 경쟁력은 향상돼 미국민은 특히 항공, 전력, 통신, 의료서비스 등에서 계속 낮아지는 요금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따라서 매년 스위스 IMD에서 발행하는 세계경쟁력보고에서 94년 이후 계속 세계1위를 유지하는 미국이 됐다.

<한솔PCS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