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자산업 구조조정 시급

최근 우리나라 경제지표를 보면 「우리 경제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국제수지 악화, 원화가치 하락, 금융신용도 저하 등의 악재들로 우리 경제가 위기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그동안 수출드라이브형 산업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왔으며 전자산업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 기업들이 저마다 「고부가가치, 첨단」 제품을 개발, 판매하고 있다고 하지만 세계시장에서 우리 제품들이 말과 같지 않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우리 전자산업 성장의 원동력이 돼온 대량생산-대량판매를 통한 「박리다매」 행태도 그 효율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인건비 등 제조환경이나 사회적인 풍토가 그렇거니와 과거 우리가 「저개발국」으로 불렀던 중국, 동남아 등 후발국가들도 이제는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경쟁상대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국내기업의 도피성 해외진출이나 국내 안방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 국가 제품들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 전자산업이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지탱하기 어려워지고 있음은 모두가 느끼고 있는 일일 것이다.

과거 섬유나 의류에서부터 반도체를 비롯한 전자산업에 이르기까지 우리산업의 형태는 분명 가격과 물량으로 범용제품 위주의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을 반복해 왔으며 「생산성」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그나마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서게 됐다. 국내 전자산업을 말할 때면 으례 커다란 공장에 구축돼 있는 일관가공라인이 똑같은 제품을 쉴 새 없이 만들어내는 장면이 자랑스럽게 소개됐고 주어진 시간내에 가능한 많은 양을 생산하고 단가를 줄여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나 이같은 생산방식이 더 이상 우리의 강점이 되지 못하고 있음은 이제 공지의 사실이 되었다. D램 반도체의 경우는 비록 경쟁우위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지나치게 특정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높음으로 인해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비록 생산성과 원가 절감에서는 성공했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높아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성적은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할것이다. 박리다매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량생산 방식과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력하고 있는 생산성 향상과 원가절감이라는 무기가 더이상 모든 것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는 우리 기업들도 진정으로 시장을 리드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고 생산체계도 시장변화에 능동적이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제로 변화해야 할 때가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인텔사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다른 업체에 비해 훨씬 빠른 시기에 신제품을 출시, PC시장의 변화를 이끌어가는데 시스템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경쟁상대가 없는 시장에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지속적인 가격인하로 후발업체들의 여력을 줄여 추격을 원천봉쇄하고 차세대 제품으로 시장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전법을 통해 현재 세계 PC용 CPU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 1위의 반도체업체로 군림하고 있다. 또한 모토롤러가 세계 무선호출기시장을 독보적으로 끌고가고 있는 배경에는 이 회사가 각 소요 부품이나 부분품을 종류별로 모듈화, 고객의 주문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정보생산시스템을 구축한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들 두 회사의 사례는 후발국가들의 위협에 시달리는 우리 기업들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 전자업체들도 이미 양적인 팽창의 한계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과거 일본과 미국의 성공모델을 배웠듯이 이제는 이들이 보여주고 있는 「한계봉착과 실패로부터의 재기」라는 교훈을 바탕으로 위기 탈출을 위한 새로운 변신을 꾀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