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47)

1904년 4월 16일 오후 3시.

러시아군 30여명이 성진에 도착하여 원산 방면의 전신선을 절단하였다. 17일 아침 전보사에 돌입하여 『일본의 전보를 취급하였으니 일본 전보사와 다를 바가 없다』며 총과 칼로 위협하며 공갈하고, 전보사의 각종 물품과 문부를 소각하였다.

느닷없이 습격을 당한 성진전보사 직원들은 『막중한 통신사무를 잠시라도 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약간의 기재를 수습, 마천령(摩天嶺) 고개를 넘어 남쪽 90리의 단천(端川)으로 후퇴하여 주막에 전신기를 설치하고 4월 25일부터 통신을 재개하였다.

이러한 정황을 보고받은 통신원 총판은 『여러 가지 정황을 들으니 심히 민망하나 이러한 시기에 통신은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일이니 산야(山野)를 가리지 말고 그 형편에 따라 임시로 기계를 설치하여 통신케하라(無論山野隨其形便權設通信事)』는 전보를 성진전보 사장에게 보냈다.

1904년 5월 25일.

성진전보사는 러시아 군의 진입으로 4월 24일부터 단천으로 남하하여 주막에 전신기를 설치하고 통신 업무를 집행하는데, 근자에 러시아 군이 각처에 출몰하여 불안에 떨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도 임시로 단천에 설치한 전보사에서 외국 전보를 상통하고 있어 러시아 군이 전보사를 기어이 박살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민 수백 명이 『전보사 때문에 러시아 군이 내습한다』고 하며, 백성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전보사에 항의, 전신주와 기계류를 파괴하려는 기세에 이르렀다. 이에 대하여 통신원은 단천 군수에게 효유와 수습을 엄명하였으나 민요를 제지하지 못하고 결국 임시 전보사를 폐쇄 당한 채 전보사장과 직원들만 겨우 피신하였다.

요람일기(要覽日記).

천(天) 권(卷).

진기홍 옹은 보고 있던 요람일기를 덥고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었다.

먹통.

벌써 1시간 이상이 지나 있었지만 전화는 계속 불통이었다.

전화뿐만이 아니었다. FAX와 PC통신도 되지 않고 있었다. PC통신이 정상 상태라면 뉴스 서비스를 조회하여 어디서 사고가 발생했는지 파악해 볼 수 있겠지만, 전화가 불통인 상태에서는 PC통신도 당연히 불통되어 뉴스를 검색할 수 없이 된 것이다.

진기홍 옹은 전화기의 후크를 다시 한번 두들겨 보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