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기계분야 CAE세미나 특집] 고체구조·유체해석분야 진면목

컴퓨터를 이용해 고체 및 유체구조를 해석하고 이를 산업에 활용하려는 노력의 산물인 CAE(Computer Aided Engineering)분야의 대규모 세미나가 국내외 석학들이 참석한 가운데 11일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개최된다.

한국휴렛팩커드(HP)와 전자신문사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97 기계분야 CAE세미나」에는 HP시스템아키텍처설계연구소, MSC, HKS, MARC, ESI, 앤시스, 플루언트, CDI 등 세계 유명업체 CAE 연구개발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국내에서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CAE분야의 연구성과 및 기술활용에 대한 강연과 토론을 벌인다. 이 이벤트는 국내 CAE가 항공기, 자동차 설계과정에서의 일반적 구조해석 수준으로만 이해되고 있고 캐드캠 사용자들도 평소에 이를 접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용 CAE툴의 응용 및 기술동향에 대한 새로운 인식제공의 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

국내 산업계에서 CAE는 흔히 기계 및 자동차산업, 그리고 토목분야의 고체구조해석에 가장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CAE는 무엇보다도 항공기 제조과정에서 요구되는 고체구조 및 유체해석분야에서 진면목을 보인다.

CAE기술은 항공기가 이륙해서 착륙할 때까지 공기로부터 받게 되는 유체저항(shockwave) 및 부하의 영향 분석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비행기를 안전하고 경제성 있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데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같은 연구는 비슷한 원리가 적용되는 자동차산업에서 새로운 모델 개발은 물론 정적인 상태에서 가해지는 끊임없는 부하와 역학관계를 해석해야 하는 대규모 토목 및 조선분야 등 산업쪽으로까지 활용이 확대돼 오늘날 그 실용성을 확인시켜 주기에 이르렀다.

이 CAE SW를 활용하면서 항공기업체는 제작시 필요한 風洞 및 제반시험설비를 최대한 줄일 수 있게 됐고, 자동차회사는 출고 이전에 만들었던 시뮬레이션용 차량의 제작 대수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됐으며 교량 토목사업자는 다리를 지나는 수량의 속도와 유량의 부하를 계산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제조업체의 설계 및 생산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돼 제품의 생산성 향상 및 납기 단축에 획기적으로 기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최근들어 CAE의 활용 연구는 전투기에 떨어지는 낙뢰충격 결과 예측, 상용 애니메이션스튜디오에서의 가격 절감, 충격실험 결과 예측, 병원에서 짧은 시간동안 환자에 대한 완전한 모의실험 등을 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수준까지 영역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분야가 캐드캠에 비해 일반의 접근이 어려운 것도 이같은 종합적 프로세스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CAE SW는 물체에 주어지는 고도의 역학작용을 분석하고 계산하는 하드웨어의 성능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CAE와 하드웨어의 관계는 50년대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CAE분야의 구조해석이 본격 도입된 50년대 말과 60년대 초에 이르면서 오늘날 이 분야 해석이론의 양대 핵으로 발전한 유한요소해석과 유한차분법의 분류가 자리잡았다.

당시만 해도 포트란언어를 이용한 CAE가 활용되는 수준이었으며 보잉, 록히드, 맥도널더글러스 등 거대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대형 항공기제작사가 단일칩을 내장한 고가의 하드웨어를 이용해 CAE를 항공기설계 생산 및 해석에 적용하는 정도였다.

물론 오늘날과 상황이나 환경이 달랐던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기에 CAE산업 발전을 이끈 것은 단연 항공기 회사였던 것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들 항공기제작사의 CAE활용은 결과적으로 슈퍼컴으로 널리 알려진 크레이社나 컨트롤데이터 같은 회사의 융성기를 가져오게 됐다. CAE연구 활성화가 엔지니어링 워크스테이션 등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한 설계 생산 구조해석 전체를 주도한 것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부터 PC로 대변되는 데스크톱 컴퓨터의 등장 등 하드웨어분야에서 지금껏 계속되는 새로운 컴퓨팅환경의 변화가 서서히 이뤄지기 시작한다. 이는 종래 CAE분야에서 친숙했던 단일칩의 대형 하드웨어 환경과는 점차 거리감을 갖게 했다.

그리고 파워PC나 스파크 등 명령어축약형 컴퓨팅(RISC)칩을 이용한 소위 병렬칩 구조의 컴퓨터 출현은 CAE 작업을 수행하는 새로운 하드웨어 환경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CAE SW개발사들은 자사의 프로그램 코드를 새로운 환경의 병렬구조컴퓨터에 이식하기 어렵다는 점과 시장규모가 너무 작다는 점 등을 들어 이식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94년부터 유럽의 상용 CAE SW공급사를 중심으로 병렬컴퓨터에 자사 프로그램을 이식하는 유러포트 1, 2 프로젝트가 잇따라 시작되면서 기존 CAE프로그램을 하드웨어에 이식하려는 연구작업이 활기를 띠게 된다.

이 연구성과에 대한 평가는 매우 고무적이어서 병렬컴퓨터 하드웨어 환경을 주도하는 미국도 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美 고등국방기술연구소(ARPA)가 유러포트 기술 조사에 나서는 한편 애플리케이션 코드소유자, 산업분야 고객들, 병렬컴퓨터처리 전문가들로 구성된 유러포트 프로젝트의 컨소시엄 구조까지 연구하고 있는 것은 이 연구성과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을 반영하는 것이다.

근착 외지에 따르면 유러포트 프로젝트 책임자들은 이미 병렬화를 통해 CAE 개발에 상당한 진전을 보았다고 밝히는 한편 향후 2년내 기존 병렬컴퓨팅 환경에서 산업계에 경제적인 충격을 줄 만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이같은 세계적 기술 추세와 비교할 때 국내 CAE산업은 여러가지 면에서 아직 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국제적인 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CAE분야 시장은 매년 12%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올 기계분야 시장만 해도 4억6천만달러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국내에 도입된 전문 CAE 프로그램은 13개 업체 30여종에 달한다. 여기에는 앤시스, MSC, HKS, SAP, MARC, 몰드플로, ESI, NISA, FLAC, 시스노이스社 등이 망라된다.

지난해 이 분야 국내 시장수요는 기계분야 CAE를 중심으로 약 1백70억원 규모를 형성했고 해마다 약 20%의 성장세를 보이는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분야에 대한 정부 및 업계의 인식이 새로워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국내 CAE SW개발 진작을 위한 투자가 적정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 온 것도 사실이다.

국내에서 CAE SW 시장점유율은 한국MSC사가 30% 이상을 점유하는 것을 필두로 앤시스와 SAP, 몰드플로, 플루언트, NISA의 대리점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정도다. CAE산업은 전통적으로 상업적인 개발보다는 연구개발 위주로 인식돼 일반 설계자들에게는 접근이 어려웠던 분야로 여겨져왔다.

90년대 들어 윈도버전 등 새로운 CAE프로그램과 연계를 통한 시스템 개발이 잇따르고 있어 일반 설계자들도 간단한 엔지니어링 해석으로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 수요자 입장에서 본 CAE의 환경변화다.

이러한 컴퓨팅환경 변화 속에 국내 일부대학과 연구소들은 나름대로 CAE 기술력 확보에 나서고 있으며 최근 몇 년 사이 자동차업체 부설연구소를 중심으로 슈퍼컴퓨터 도입도 활기를 보이고 있어 이 산업에 관한한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도 CAE시대에 성큼 다가섰음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인터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김승조 교수

국내 CAE전문가로는 유일하게 세미나에 참석하는 김승조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이번 세미나에서 「CAE산업 동향과 전망」에 대해 강연한다. 김 교수를 만나 우리나라 CAE분야의 산업적 활용 및 기술수준, 국산화 가능성에 대해 들어보았다.

-국내 CAE 활용 수준은.

자동차분야가 가장 두드러진다. 자동차업체들은 최근들어 이전에 수행하지 못했던 설계후 작업과정에서 시뮬레이션용 최적 수치를 나름대로 규정할 정도로 활용수준이 높아졌다. 이들 업체는 진동해석실험 응력데이터 추출 등을 통해 유한요소해석을 하고 시뮬레이션을 수행한다.

-국내 산학계의 CAE분야 기술 수준을 평가한다면.

구조해석분야가 두드러지며 유체역학분야 활용은 드문 편이다.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업체들의 경우 이 하드웨어 운용 인력 및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최근들어 중소기업도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기업과는 달리 CAE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는 하드웨어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등 여건이 부족하다. 학계의 경우 서울대는 통산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기계설계, 기계, 항공우주공학과, 화공학과 등이 공동으로 정밀설계 공동연구소에서 유체분야 시험연구 프로젝트 및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 분야의 향후 과제는.

우리나라도 고유의 CAE SW를 하나정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미국의 CAE업체인 SAP 같은 회사가 벤처성 기업으로 시작해 나름대로 입지를 확보한 데서 보듯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CAE는 하드웨어환경이 변화하고 있어 선진국연구수준도 우리보다 몇 년 앞선 것에 불과하며 우리도 연구력을 집중한다면 CAE SW의 상용화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지도 않다. 유체역학분야의 코드는 세계적으로도 미완성이므로 이 분야에서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다.

-CAE 개발방향은 어떻게 설정하는가.

이 부분은 크게 운용환경에서 CAE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 수학적 표준화로 수치해석의 병렬화를 이루는 것, 유체역학을 그대로 살려 병렬처리하는 것 등 세 가지 안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가장 현실적인 것은 세번째 방안이라고 본다.

<이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