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법 위반.
베델이 발행하던 매일신보에 고종 퇴위에 관련된 기사가 나간 후 김철영은 보안법 위반이란 이름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또한 당시 36세의 영국 언론인 베델도 일본의 영향으로 영국정부로부터 실형을 선고받고 홍콩에서 복역을 하게 된다. 복역을 마친 후 베델은 다시 우리나라로 들어와 생활하게 되지만 1908년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김철영을 비롯한 궁내부 통신사 직원들은 경제난에 허덕이는 베델에게 고종황제가 제공하여 주는 자금을 전해주는 등 막후 밀사의 역할도 수행하였는데, 이러한 사실들이 일본군의 감시대상이 되었고, 급기야 김철영을 비롯한 조선의 통신인들이 귀양을 가야 했고, 젊은 언론인 베델은 목숨을 잃어야 했던 것이다.
진기홍 옹은 다시 요람일기를 펼쳤다.
일기가 기록된 본문 첫 장이었다.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붓끝이 10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1904년 2월 8일.
대구전사장(大邱電司長)으로부터의 전보.
그제 하오 4시경에 부산과 창원의 전보사가 불통되더니 어제 아침에 충전양사(忠全兩司)가 또 불통되어 각각 공두(工頭:수리원)를 보내어 보수케 하고 통신을 기다리고 있던 중, 하오 7시에 일본병참소 부위가 본사장(本司長:대구전보사장)을 청하기에 곧 가보니 그 위관이 말했다.
『일본정부의 명령이다. 한성, 인천, 창원, 부산전보사는 우리 군대에서 점령하고 이후로 귀 전보사에도 부대원을 파송할터이니 암호전보는 국내외를 물론하고 영문 및 국문 어느 것도 접수하지 말 것이며, 명전(明電:일반전보문)만 받되 본대 파견인의 지휘에 따라 시행하라.』
대구전보사장이 『각처의 전선이 불통이다』라고 하니, 『보수하지 말라』고 한다. 어찌 조처해야 할지 회시(下燭伏望)를 바란다.
진기홍 옹은 요람일기 천(天)권 첫 장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대구우사(大邱郵司)의 전보.
일본병참소에서는 이후로 들어오고 나가는 외국인 서찰을 검사한다 하니 조치 바란다.
전쟁 중에 통신권의 장악은 그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요람일기는 당시 러시아와 전쟁을 준비 중에 있던 일본이 전쟁에 통신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강제로 조선정부의 통신시설을 강탈해가는 과정의 기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