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들어 미국에서 새롭게 대두된 경영개념이 「기민한 기업(Agile Company)」이다. 이는 지적 능력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를 신속하고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기업조직을 말한다. 과거 기업간 경쟁은 누가 양질의 제품을 싼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동일한 제품을 시장에 빨리 내놓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기존 대기업은 비대해진 조직을 슬림화하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데 전력을 쏟았으며 그 결과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기민한 기업의 이상형은 벤처기업이다.
미국에서 창업은 거의 대부분 대학생들의 꿈이며 마치 햄버거를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햄버거를 먹는데 지원하지 않는 것처럼 창업을 하는데 지원하는 일은 거의 없다.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자금을 어렵지 않게 조달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선 때 아닌(?) 벤처기업 열풍이 불고 있다. 십수년 전에 이미 우리나라의 컴퓨터, 정보통신업체들은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기술과 전망에 모든 것을 걸고 창업이라는 모험을 떠났던 것이다. 대표적인 벤처기업이라 할 수 있는 삼보컴퓨터와 큐닉스도 그같은 과정을 겪으면서 이제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런데 이제 와서야 정책당국자들이 벤처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심을 쓰는가 하면 벤처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이때다 싶은 듯이 온갖 요구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정책지원의 골자도 따지고 보면 자금이고 벤처기업 종사자들의 요구도 자금이다. 벤처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양자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갓난아이가 우유를 필요로 하듯 벤처기업이 걸음마 단계에서 꼭 필요한 것은 자금이다. 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정부 차원에서 벤처기업을 지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번에야말로 벤처기업이 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정책지원의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