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비메모리산업 현주소 (1);프롤로그

지난해 가격폭락으로 메모리 일변도의 생산구조를 지닌 국내 반도체산업의 취약성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또한 이는 그동안 말로만 외쳐왔던 비메모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다. 올 들어 반도체 3사가 비메모리부문에 투자를 집중하고 관련조직을 신설하거나 승격시키는 등 가시적인 비메모리사업 강화방안 마련에 힘쓰고 있고, 통상산업부와 정보통신부 등 관계당국이 앞다퉈 중장기 육성책을 발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내 반도체산업계가 「생존과제」라고 주저없이 꼽을 정도로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는 비메모리 반도체사업 육성의 필요성과 국내 업체들이 처해 있는 상황,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집중 점검한다.

<편집자>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반도체시장은 1천4백20억달러에 달한 가운데 이중 D램을 비롯한 메모리 제품(3백78억달러)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도 못미쳤다. 나머지 70% 이상은 마이크로컴포넌트, 로직, 아날로그, 파워TR 등 개별소자류가 차지했다. 전체시장의 30%도 안되는 메모리시장을 놓고 국내 반도체산업은 「울고 웃었던」 셈이다.

지난해 D램 가격폭락은 국내 반도체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까지 이르렀다. 이는 메모리 일변도의 기형적인 생산구조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중병」임을 다시 한 번 웅변했고 이를 통해 정부와 업계의 가시적인 비메모리 육성책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비메모리 반도체 육성을 위한 당국과 업계의 접근방법을 들여다보면 실효성이 상당부분 의문시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메모리는 범용 제품인 메모리와는 달리 무조건 찍어내기만 하면 팔리는 것이 아니라 수요업체가 사양으로 적용해 주느냐의 여부가 관건이기 때문에 시스템업체의 저변확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 여기저기서 구호처럼 나오는 반도체업체 중심의 비메모리 육성책은 이같은 산업구조를 직시하지 못한 측면이 적지 않다.』(김무 아남반도체기술 사장)

미국과 일본이 비메모리 강국으로 올라선 데에도 바로 가전, PC, 통신 등 시스템산업의 뒷받침이 큰 몫을 했다. 이 뿐만 아니다. 비메모리 반도체는 대규모의 시스템시장 외에도 의료기기, 자동차, 게임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산업이 대형 수요처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메모리와는 분명 다르다.

『물론 어렵겠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지금까지 메모리 하나 제대로 하기도 솔직히 바빴지만 그간 메모리에서 다져온 우수한 양산공정기술은 비메모리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할 수 있는 강점이다. 특히 CMOS공정 기반인 우리 반도체산업은 설계 및 디자인기술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면 언제든지 폭발적인 위력을 떨칠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박영준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비메모리는 절대 단기적인 시각에서 육성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학교, 정부, 연구소, 업계 등이 각 분야별로 많은 시간을 갖고 인프라를 구축해 역할분담적 육성책 마련이 필요하다.』(인텔코리아 관계자)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간 메모리 시각에서 바라본 비메모리라는 용어자체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것이 뜻있는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체 반도체의 70%를 메모리에 편향된 시각에서 싸잡아 비메모리라는 단어로 총칭하는 것 자체가 국내 반도체산업의 마인드를 메모리에 묶어두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한창 비메모리 육성론이 제기되자 업계는 물론 정부당국에서도 ASIC 육성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 적도 있다. 그때는 또한 상당수가 비메모리하면 마치 마이크로 제품의 하나인 ASIC밖에는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

요즘 업계와 학계에서는 시스템IC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아직 확실하게 정착된 용어는 아니지만 비메모리적 발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산업육성을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 손색이 없는 표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까지 업계와 정부가 구호처럼 「육성」을 외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비메모리 반도체사업이 답보를 거듭해온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비메모리적 시각교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