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환경이 악화되고 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은 「보호와 개방」이란 양날의 칼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 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보도다.
올들어서만도 정보통신관련 완제품 및 부품의 무관세화를 규정한 정보기술협정(ITA)이 미국의 주도로 체결된 데 이어 최근에는 아, 태지역(APEC)내 무관세화 추진대상 품목으로 가전제품을 우선 적용시키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 국민들의 과소비 추방 캠페인에 대해서도 「또 다른 무역장벽」이라고 트집을 잡고 있는 실정이다.
전자제품의 무관세화는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전자업계는 무관세화가 수출증대에 따른 이득보다는 수입증가에 따른 손실이 훨씬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국산 가전제품이 소비자들의 외제 선호도와 함께 가격경쟁력마저 상실해 동남아산 필립스 제품과 미국산 소니제품에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가전제품의 무관세화가 현실화될 경우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수출환경은 우리에게 갈수록 불리해지고 있다. 미국은 같은 북미자유무역국가(NAFTA)인 멕시코에서 생산한 한국 컬러TV에 대해 우회 덤핑조사를 벌이고 있으며 컬러TV 덤핑 무혐의 결정도 계속 미루고 있다고 한다. EU도 마찬가지다. 올들어 한국산 팩시밀리에 대한 덤핑조사 개시와 함께 한국산 전자레인지에 대해 반덤핑 관세흡수(Anti-Absorption) 혐의로 조사를 시작하는 등 무역장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전자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미국 정부의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덤핑 무혐의 결정 지연, 자국 산업보호에만 집착한 통상압력 등 앞으로 미국이나 EU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응해 나간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례에 비추어 이들 선진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바로잡아 성과로 연결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미국의 대외 통상정책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교역 상대국의 시장개방을 효과적으로 달성하려는 전략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다.
우선 미국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통해 다자간 무역규범을 제정하고 다자간 협상카드를 활용해 각 회원국의 시장개방을 가속화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 이와 함께 지역무역협정의 차원에서는 NAFTA, APEC 등을 통하여 회원국간 보다 광범위한 시장개방의 성과를 얻어내려 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통상정책은 이같이 다양한 협상의 장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반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원론적으로 WTO체제를 지지하고 자유무역의 창달을 주장하면서도 교역 상대국의 행위가 미국의 국익에 불리한 경우에는 공정무역의 개념을 가차없이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의 개념에 기초한 호혜적 상호주의와 보복조치를 합리화한 통상법을 근거로 해 일방적으로 자유무역을 지향하기보다는 교역 상대국의 시장개방을 유도하는 것이 미국 통상전략의 특성이다.
미국은 특히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시장을 자국산 제품의 수출을 늘릴 수 있는 전략적 요충으로 보고 이 지역에 대한 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내우외환에 직면한 우리의 통산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별다른 묘안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민이다. 무역자유화는 세계적인 흐름이다. 무관세화도 그 범위를 다소 줄이거나 시기를 단계적으로 늦출 수는 있어도 수입을 의도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품질과 가격은 물론이고 디자인이나 브랜드 이미지나 쓰임새 등에서도 외산과 경쟁할 수 있는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게 급선무다.
그러나 경쟁력이 있는 수출상품이 자칫 정부의 무관심으로 선진국들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의 희생양이 된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반여건을 개선하고 통상문제에 대해서는 정공법으로 나서 업계의 고충을 해소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