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쁘아종

「내일로 흐르는 강」을 본 사람이라면 박재호 감독을 아주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스타 없이 감독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이용해 어떻게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적인 예였다. 이 영화는 마치 카메라로 소설을 쓰는 듯한느낌을 주었으며, 허구를 자전적 사실처럼 보이게 하여 관객을 화면에 강하게 몰두시켰다.

이러한 효과는 이 영화가 금기라 할 수 있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배가되었을 것이다.동성애를 취급하는 방식이 너무 우호적이었고, 감독의 취향에 대한 어리둥절한 흥미까지 아울러 느끼게 해 주는 영화였기 때문에 박재호라는 이름은 단번에 상당히 강한 인상을 관객에게 남기는 데 성공했다. 그의 후속 작업은, 따라서 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없었다.

<쁘아종>은 타락한 우리 시대의 도시에 대한 우울한 탐색이다. 도시가우울한 것은 인간의소망이 번번이 배반당하기 때문이다. 가령 이 영화에나오는 한 인물은 별을 좀더 잘 보기 위해 빌딩 옥상 다락방에 산다.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별을 영영 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맞은편 대형 전광판이 그의 시야를 온통 가리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이만나게 되는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타락한 도시에서 순수를추구하는 일은 왜 번번히 좌절당하게 되는가를 이 장면은 뛰어나게 요약해내고 있다.

<쁘아종>은 타라한 도시에서 고독하게 살던 정일(박신양 분)이라는 인물의 비극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여기서 「타락한 도시」를 「고독한 인간」과 대비시키는 감독의 솜씨는 뛰어나다.타락의 반대말이 왜 고독이 되는지도 보여준다. 그러나 고독은 이 영화의 정일이 그러하듯 타락을 이기는 부적이 되지 못한다. 고독은 순수를 동경하는 인간의 정신이라는 면에서는강한 것이지만, 숙면을 갈구하는 육체의 본능이라는 약한 면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린(이수아 분)의 말대로 섹스가 가장 좋은 치료제가 되는 증세이기도 한 것이다.따라서 정일의 고독은 서린의 향기 「쁘아종」을 거부하지 못한다. 쁘아종은 타락한 도시가 고독한 일탈자들을 향해 뿜어대는 밤의 향기이다. 그것은 고독한 인간의 삶을 단번에 함몰시킬 만큼 강력한 것이다.

박재호 감독은 그의 후속 작품 <쁘아종>을 아주 상업적인 영화로 만들어버렸다. <내일로흐르는 강>에서 느껴지던 감독의 진지한 실험정신을 <쁘아종>에서는 더이상 찾을 수 없다.<쁘아종>에서 관객이 만나게 되는 것은 「흥행」에다 정면 승부를 걸고 있는 한 재능있는 감독의 놀라운 자기 변신이다.

다행히 그 변신은 성공적으로 보이며 그의 전도 또한 유망해 보인다.상업적 욕망이 곳곳에서 읽히지만 절제력 때문에 그리 큰 결함으로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경영의 인상적인 연기를오랜만에 보는 기쁨이 있다. 박신양과 신인배우 이수아의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 또한 묘한감동을 준다.

<채명식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