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내에서의 국산 가전제품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APEC이 관세철폐를 중심으로한 무역자유화 분야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데 이어 우리 정부가 조기자유화 추진 부문중의 하나로 가전제품을 검토함으로써 업계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
즉 APEC내에서 가전제품이 무관세로 자유롭게 교역될 경우 국내 가전산업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지, 아니면 큰 손실을 입게될 것인지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또 이에 따른 가전업계의 행보는 어떠할지도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가전제품이 무관세화돼 APEC내 자유무역이 이루어질 경우 우선 백색가전 분야에선 시장확대의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AV기기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은 정반대의 상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요즘 가전3사가 수출주력 상품화하기 위해 신규시장 등의 개척에 열성적으로 나서고 있는 백색가전제품은 현재 30%에서 60%에 이르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높은 무역관세장벽이 철폐된다면 수출시장을 넓힐 수 있는 호기다. 전자업계의 세계화, 현지화 추진으로 이들 백색가전 제품도 해외 현지생산이 확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AV기기와 달리 설비투자비 부담이 크고 아직 생산단위 시장규모를 맞출 수 있는 지역이 드문 등 수출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는 얘기다. 특히 동남아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물류비용면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유리하다. 다만 중국은 가전3사가 현지화의 승부처로 삼고 있고 이들 백색가전 제품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출증대 효과가 반감될 전망이다.
이들 백색가전제품은 또 국내시장이 무관세화돼 외산제품들과 동등한 경쟁을 벌인다 해도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 업계의 기술력과 관련 산업기반이 비교적 탄탄한데다 가전3사간 치열한 판매경쟁을 통해 적어도 국내시장에선 확실한 마케팅 노하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시장 공략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온 미국과 유럽 브랜드들이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백색가전이 그 지역의 문화와 관습 등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과는 달리 세계공통적인 성격을 지닌 AV기기는 상황이 다르다. 국내시장이 무관세화될 경우 일본제품과 동남아산 저가제품이 대량으로 급속히 유입되고 수출 측면에서도 상대국의 무관세화에도 불구하고 이미 전자3사가 대부분 현지생산 체제로 전환돼 별다른 플러스 요인이 없어 보인다.
국내시장의 경우 일본과의 무역역조 개선을 위해 운영해 온 수입선 다변화 제도가 버티고 있고 관세가 부과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최근 APEC 지역에서 생산된 일본 브랜드의 컬러TV가 저가로 대량 수입돼 국내시장을 잠식하는 현상만 봐도 잘 알수 있다. 뿐만 아니라 VCR, 캠코더 등도 현재 동남아산 일본제품과의 경쟁에서 뒤져 수출은 계속 감소하고 수입은 증가하는 상황이다.
<이윤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