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내에는 10여개 이상의 중소 ASIC업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나 시스템 업계가 이러한 ASIC 전문업체들의 존재나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입니다.』
최근들어 주문형반도체(ASIC)을 비롯한 각종 시스템IC 산업의 육성을 위해 나라 전체가 떠들석한 가운데 정작 이 분야의 전문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른 동네 잔치보듯 해야만하는 국내 ASIC 전문업체 한 관계자의 푸념섞인 말이다.
ASIC 설계 경력만 10년으로 현재는 이 분야에서 어느 정도 사업적 성공까지 거둔 Y사장. 정부 출연 연구소 출신인 그 조차도 『HDTV,휴대폰,전자교환기용 ASIC 등 굵직 굵직한 개발 사업들이 정부 연구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추진돼 왔으나 항상 한박자 늦은 개발로 상품화에는 실패해 왔으며 그나마 우리같은 중소 전문업체들은 여기에 참여조차 못해봤다』고 토로한다.
대기업의 시스템 IC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현재는 ASIC 설계전문업체를 운영중인 S사장의 말을 들어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정부나 시스템 업체들은 핵심 칩 만큼은 당연히 외국 제품을 써야 하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시스템에 대한 국내 표준을 결정하는데 있어 핵심 칩을 국산화하겠다는 의지 보다는 외국에 로열티를 조금 낼 수 있는 쪽으로만 무게를 둘 수 있는가. 이는 결국 핵심 칩의 국산화를 아예 포기하는 셈이자 국내 ASIC 업체들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일이다.』
이러한 국내 분위기에 대해 또다른 ASIC 업체 P사장은 『정부나 대기업은 우리같은 업체들을 기껏해야 단순 하청업체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외국 ASIC 설계 업체들에게는 몇 천만달러씩 투자하는 대기업들이 국내 업체들에게 CAD툴 하나 지원하는 것도 아까워한다. 실제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한국 대기업을 「봉」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며 불필요한 해외 투자와 로열티를 국내 투자로 돌리지 못하는 현실을 못내 아쉬워한다.
그럼에도 이 분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통신과 멀티미디어 등 첨단 시스템의 국가 경쟁력과 ASIC 등 각종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ASIC 업체들이 겪고 있는 현실 상황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 아닙니까. 우리같은 ASIC 설계 전문 업체들이 더 많이 생겨야하고 또 그렇게 될 겁니다. 그리고 이들 중 몇몇은 머지않아 지금과는 반대로 파운더리 설비를 지닌 대기업에 자체 브랜드 칩을 OEM으로 주는 회사로 성장할 겁니다. 우리나라 같은 환경에서 그 정도 포부없이 이 사업을 시작했겠습니까』
ASIC 설계기술 하나로 이 시장에 뛰어든 한 30대 사장의 말은 국내 중소 ASIC 업체들 모두가 지니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자 포부이다.
<주상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