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처 안전심사관 李憲圭
지난 4월21일은 과학기술처가 발족된 지 꼭 30년째 되는 뜻깊은 날이다. 과학기술처가 이날을 기념,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1주일 동안 개최한 과학축전 행사에는 4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등 큰 성황을 이뤘고 매스컴에서도 4월 한달 동안 과학관련 대형 기획물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바야흐로 전국에 과학입국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필자는 지난 1년 동안 「과학기술 30년사」 편찬작업에 참여하면서 지난 30년이 우리나라 과학기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과학기술 역사가 1백년이 넘는 국가가 수두룩하고 또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분석틀을 동원, 과거를 폭넓게 조명해 볼 수 있는 경험과 여건을 갖추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주로 외국에서 개발된 연구성과물을 수입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왔기 때문에 그동안의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평가를 내려야 하는 것은 여러가지로 무리가 따르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가운데 66명에 달하는 편찬위원들은 여러차례 난상토론을 거친 끝에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의 특징이 경제정책의 큰 틀에 맞춰 수립되고 운영됐다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즉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공업화로 표현되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인력과 기술을 공급함으로써 국가발전을 뒷받침해 왔다는 것이다.
초창기 국내에 축적된 과학기술 지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기술을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도약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산업기술 연구와 고급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연구기관과 과학기술원(KAIST) 등을 설립하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은 과학기술이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80년대 이후 반도체를 비롯해 전자, 자동차 산업 등의 성장은 이러한 씨앗들이 자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처도 국가 과학기술체계를 확립하고 과학기술계에 적절한 연구비를 제공하면서 공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공급했다. 최근 과학기술 관련정책을 수립 및 시행하는 정부 부처가 많아진 데다가 연구비 지출규모에 있어서도 민간부문의 비중이 정부의 그것을 압도할 정도로 높아짐에 따라 과기처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과기처가 지난 30년동안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왔다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기술 30년의 발자취를 정리하면서 모두 이러한 긍정적인 면만 본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동안 경제개발 논리에 밀려 기초적이고 창조적인 연구는 뒷전에 두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응용연구에 치중해왔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또 우리나라 과학기술 연구 및 교육구조가 지난 30년 동안 한번도 근본적인 개혁을 이룩하지 못한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우리가 앞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서방의 기술을 모방하는 것으로는 안되며 우리 나름의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연구개발체제를 구축할 때에만 가능한 일인데 이러한 작업은 가장 성공적인 선진국들조차 족히 수십년의 기간이 필요할 정도로 대단히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