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비메모리산업 현주소 (5);국내 연구소

현재 국내에는 정부 및 대학을 주축으로 한 각종 반도체 설계 관련 연구소들이 설립돼 있다. 전자통신연구소(ETRI)의 반도체연구단과 전자부품연구소(KETI)내 ASIC설계센터,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원의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가 대표적인 정부 지원 연구소들. 이밖에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들이 정부 또는 기업의 지원하에 반도체 관련 연구 및 교육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TRI와 KETI가 지금까지 중소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한 ASIC은 총 80여종. 이중 초음파진단기, 스마트카드, 레이저프린터, 화재경보기용 ASIC 등 80% 이상이 상품화됐다. IDEC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 또한 ASIC 설계 및 반도체공정 관련 교육을 통해 지금까지 무려 8천명 이상의 전문인력을 배출했다.

이같은 국내 연구소들의 지원활동에 대해 ETRI 반도체연구단 남기수 부장은 『국내 반도체산업 가운데서도 시스템IC 분야만큼은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연구소들의 지원활동은 시스템IC산업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소규모 중소업체들이 ASIC 제작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행 국가 연구소들의 지원활동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국내 연구소 대부분은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먼 일반용도의 기능통합형 IC를 시험제작하는 정도이거나 기껏해야 소량생산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정도는 일반 설계전문 업체들도 외주 등을 통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국내 연구소의 활동이 국내 시스템IC산업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고 본다.』(S설계 업체 P사장)

국내 연구소의 지원활동이 어느 정도 한계에 도달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소 관계자들도 공감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활동의 한계가 연구소차원에서만 고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ASIC 하나를 만드는 일은 그리 단순치가 않다. 아이디어와 설계, 그리고 시험과 양산, 이 모든 과정들이 우리에게는 하나의 넘기 힘든 벽이다. 반도체 설계 툴 하나가 수천만원이고 워크스테이션같은 CAD장비는 더욱 비싸다. 더구나 설계까지는 어떻게 했다 하더라도 생산하려면 물량이 최소 1만개 정도는 돼야 한다. 이런 마당에 정부와 대기업의 적극적인 지원없이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ETRI P선임연구원)

『최근 국내에서 1GD램이 개발됐다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별로 기쁘지가 않다. 그만큼 메모리와 시스템IC간 산업비중이 더 벌어졌으며 또 이는 ASIC의 제조단가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연구소의 ASIC사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것인지는 정부와 대기업의 참여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KETI Y부장)

『국내 시스템IC산업이 발전하려면 뭔가 획기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의 단편적인 지원책이 아니라 설계환경과 인력양성, 그리고 ASIC 제작 및 시험검사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할 수 있는 통합된 인프라체제의 구축이 절실하다.』(IDEC 경종민 교수)

전세계 시스템IC산업의 메카로 인정받는 실리콘밸리의 탄생이 대학 또는 연구소 인력의 아이디어와 「천사(Angel)」라 불리는 기업 후원자들의 지원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국내 연구소들에 대한 정부 및 기업의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은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