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국경 사라진 오디오시장

오디오 시장의 국경이 사라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로 오디오 생산기지를 대거 이전하고 전세계를 무대로 글로벌 경영을 전개하고 있는가 하면 반대로 외산 오디오들이 국내에 물밀들이 몰려와 내수시장을 잠식, 오디오 시장의 국경을 허물고 있다. 내수시장에서 성공했다고 안주하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오디오 시장의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무역장벽의 해체.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각국의 무역규제 완화로 국가간, 기업간의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오디오 시장의 경우 일본 업체들은 중국과 말레이시아 등지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 제품을 양산해 세계 각국의 현지판매법인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 생산기지에서 해마다 만들고 있는 오디오의 규모는 업체당 평균 7백만~1천만대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필립스나 소니 등 다국적 업체들은 모델 하나로 몇백만대씩 생산해 이를 세계 각지에 뿌리고 있다. 이처럼 대량생산체제를 갖출 경우 한 모델을 기획해서 제품을 만들어도 판매되는 물량과 금액이 워낙 엄청나 투자비를 손쉽게 뽑을 수 있다. 여기서 얻어진 이윤은 신제품 기획과 개발 및 생산에 투자되고 나머지를 본사에 보내는데 이 금액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 매출액의 5%만 투자해 그중 한두개만 성공하면 나머지 모델이 실패해도 회사운영 및 시장개척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국내 업체들의 해외 생산기지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다. 국내 업체들 가운데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중국 혜주에 오디오 생산기지를 가동하고 있으며 오디오 업체 인켈을 인수한 해태전자도 영국과 중국에 현지공장을 확보하고 있다. 또 아남전자도 중국 광동성으로 오디오 생산공장을 옮기고 있다.

중국 광동성에 4천80여평의 오디오 공장에서 6개 생산라인을 가동해 연간 4백만대의 각종 오디오를 생산하고 있는 해태전자는 올해에 총 18개 라인으로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제2,제3의 오디오 공장을 신설할 방침이다.

해태전자는 또 영국 뉴캐슬에 오디오 공장을 확보, 유럽지역을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중국 혜주에서 미니컴포넌트, 마이크로컴포넌트, 카세트류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지난해 1백10만대 가량을 생산해 이 가운데 10%만 국내 시장에 들여왔고 나머지 90%는 중국 내수시장이나 세계 각국으로 수출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9개 모델의 오디오를 생산했으나 올해부터는 15개 모델에 연간 1백30만대로 생산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도 중국 혜주에 연간 80만대 규모의 오디오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으며 올해엔 연간 생산량을 1백만대로, 내년엔 1백80만대로 생산규모를 대폭 확대할 예정이다.

가정용 오디오 시장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는 대우전자도 동남아산 저가 오디오에 대응하기 위해 95년 오디오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해 지난해 40만대의 오디오를 생산했으며 올해엔 50만대 선으로 생산규모를 늘릴 방침이다. 대우전자는 이와함께 중국 천진에 카오디오 생산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이밖에 아남전자도 중국 광동성에 대지 1만평 규모의 공장부지를 확보, 기존 부평공장의 생산시설을 이전해 내년부터 오디오 라인을 본격가동할 예정이다. 아남전자의 중국 공장에서는 리시버 앰프, 미니컴포넌트, 디지털 방송시스템 등의 각종 오디오가 연간 25만대 규모의 생산시설에서 쏟아져 나올 계획이다.

이처럼 오디오 업체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외에서 부딪히고 있는 일제 동남아산 오디오와의 가격경쟁 때문. 값싼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 일본의 선진기술, 대량 생산체제 등으로 무장한 동남아산 오디오들은 국산보다 평균 10% 이하의 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어 중저가 오디오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국산제품의 강력한 경쟁자가 되고 있다. 내수시장에도 외산 저가 오디오의 반입이 늘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산 미니컴포넌트의 수입물량은 지난 95년 총 2만5천대에서 96년 5만대로 늘었으며 올해엔 8만대가 수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입업체들 역시 과거엔 중소 무역업체이나 다국적기업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최근엔 오디오 제조업체들까지 가세해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명 워크맨으로 통했던 헤드폰카세트의 경우 수입물량은 95년 9만8천대, 96년 8만6천대를 기록했고 올해엔 7만9천대가 수입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헤드폰카세트의 수입이 그나마 줄고 있는 것은 최근 국산품의 판매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내 업체들이 중국 등지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동남아산 저가 오디오의 공세에 대응하기 위해 임금이 싼 곳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국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이파이 오디오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우수해 경쟁력이 있지만 미니컴포넌트 등 중저가 오디오는 외산 오디오와 도저히 가격경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헤드폰카세트도 과거엔 우리나라 중소기업으로부터 공급받아 판매했으나 지금은 중국산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생산기지 이전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할 경우 단기적으론 중국이나 동남아산 저가 제품들과 경쟁을 벌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론 산업공동화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세트 제조업체들의 해외이전에 따른 주변기기, 부품산업, 소재산업, 표면가공 관련산업 등의 침체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중국 공장 등에서 생산하고 있는 오디오 제품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것들이지만 중국이 국내 기술을 이전받아 독자개발을 할 경우 풍부한 인력과 자원 등을 바탕으로 국내 수준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실 예로, 중국 혜주에서는 일본 업체 및 삼성전자, LG전자 등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중국 업체들이 독자적으로 중저가 오디오를 개발, 생산하고 있는데 그 물량이 연간 8천만대 정도에 이르며 이 제품들은 중국 내수시장과 전세계 시장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업체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은 단지 내수시장만 겨냥한 것은 아니다. 외국에서도 동남아산 일제 오디오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며 국산 오디오의 가격을 낮춰달라는 외국 바이어들의 요구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고육지책으로 무리한 투자를 해가며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이전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오디오의 90% 가량을 중국 내수시장과 해외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것도 국산 제품으로는 일제 저가 제품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들의 해외진출은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보이고 있다. 일부 업체는 외국 오디오 업체를 통째로 샀다가 투자한 만큼의 효과도 보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고 있으며 일부 업체는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려다 아예 계획 자체를 포기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또다른 곳에선 오히려 우리나라 보다도 더 유명한 오디오업체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경우도 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해외사업이 성공하려면 이같은 선례를 참고해 시행착오를 더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