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벤처기업이 뛰고 있다 (4);한아시스템

도전과 응전 그 현장을 가다 (2)

「우리 기술과 우리 제품으로(韓) 아시아(亞)를 제패하자」

네트워크 전문업체 한아시스템(대표 신동주)은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든」 전형적인 벤처기업이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한아시스템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한아시스템은 벤처기업이라는 이름 외에 「네트워크 장비 국산화 업체」라는 꼬리표를 항상 달고 다닌다. 회사 설립때부터 자체 기술로 네트워크 장비를 제작하는데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네트워크 분야에 일찍 뛰어들었으나 지난 2∼ 3년간의 호황기에도 나름대로 수익을 거두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동일한 출발선상에서 달리기 시작한 다른 네트워크 전문업체들이 외국의 유명 업체들의 장비를 들여와 사업을 추진,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한아시스템의 지난해 매출액은 27억원으로 전년의 17억원에 비해 50%를 상회하는 높은 신장율을 보였지만 60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회사로서는 아직도 형편없는 매출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네트워크업계가 호황을 구가했던 지난해, 비슷한 규모의 다른 업체들이 최소한 1백억원 이상의 매출실적을 올린것과 비교하면 마이너스성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아시스템의 인력 및 사업 구조를 살펴보면 이같은 성적표에 수긍이 간다.

우선 인력구조를 보면 전체 직원 가운데 연구원은 20여명. 고객에 네트워크 구축 및 유지, 보수를 제공하는 기술지원부서의 인원까지 합하면 기술분야에 종사하는 인력은 대략 30여명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연구개발비에 쏟아붓는 액수는 회사의 규모에 비해 정도를 지나친다. 전체 매출액의 60%를 기술연구와 장비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벤처기업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신동주 사장은 이에 대해 『91년 금성사(현 LG전자) 동료들과 한아시스템을 설립한 이후 기술개발에만 몰두했다. 독자기술을 확보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이로 인해 막심한 손해를 보고 있지만 벤처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그 길 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결국 항상 자금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이 자체기술을 갖지 못하고 남의 제품으로 장사하면 그만큼 빨리 손을 털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와 함께 국산장비는 덮어놓고 외면하는 「국산장비 기피증」도 한아시스템의 사업이 저조힌이유이다.

한아시스템이 지금까지 자체기술로 탄생시킨 제품은 터미널서버, 허브, 근거리통신망(LAN)카드, 네트워크관리시스템(NMS), 통신중재장치 등 무려 50여종에 이른다.

네트워크업계는 한아시스템이 개발한 장비는 외국업체들의 장비와 겨루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며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실제로 한아시스템은 각계 기관으로부터 개발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지난 92년 개발한 통신중재장치(CMD)는 한국통신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전국 54개 전화국에 납품된 실적을 갖고 있다. 산업용컴퓨터의 표준버스인 VME버스를 채용한 CPU보드 「KVME041」은 지난 94년 장영실상을 수상했으며 터미널서버는 지난해 KT마크를 획득했다.

그러나 이들 장비는 실수요자인 기업의 손길을 잡는 데는 적지않은 어려움을 구반하고 잇다. 외산장비가 거의 1백% 국내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아시스템이 개발한 장비를 쓰겠다고 선뜻 나서는 기업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지난해 한아시스템은 이같은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전격 마련했다. 정보통신부가 구축한 전국 우편전산망에 한아시스템이 개발한 터미널서버가 대량 납품된 것이다. 이에 힘입어 대규모 육군전산망 구축사업에도 참여하게 됐다.

신동주 사장은 『이제서야 국산제품이 실제로 사용처에서 검증받게 됐으며 이것은 우리 기술력의 승리』라고 기뻐했다는 후문이다. 한아시스템이 91년 설립 이후 다시 한번 네트워크 장비 국산화 의지를 불태울만한 호재를 만난 것이다.

최근에는 정보통신부로부터 중소정보통신 유망기업으로 선정돼 라우터 개발자금을 받게 됐다. 라우터 기술을 확보해 놓고도 자금부족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상황을 타개할 수 있게 됐다. 경사가 겹친 셈이다.

또 국가적으로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는 현상황은 한아시스템에게 「가뭄 뒤에 단 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아시스템은 이를 적극 활용해 고성능, 고가의 장비를 개발, 국산장비의 수준을 한단계 향상시켜 놓는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올해 매출목표도 1백27억원으로 늘여잡았다. 주력품목인 터미널서버, 허브, 카드 등 네트워크장비가 점차 팔려나가기 시작하면서 가능성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신동주 사장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얘기다. 네트워크 장비는 성능검증이 판매를 좌우하기 때문에 정보통신부와 같은 정부부처에서 한번 인정한 이상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자신하고 있다.

물론 기존 기술과 장비만을 갖고 사업을 이끌어 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한아시스템은 미국에서 벤처기업으로 성공한 자일랜과 기술협력계약을 체결, 스위칭 등 선진기술을 습득할 계획이다.

한아시스템과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던 자일랜의 한국계 사장 스티브김이 한아시스템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한 덕분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아시스템은 네트워크 전 분야에 걸쳐 기술, 장비를 구비한다는 원대한 구상을 세워놓고 있다.

통합배선시스템 기술을 근저에 두고 LAN카드, 허브, LAN스위치, 비동기전송방식(ATM)스위치 및 NMS 등 장비를 일괄 공급하는 제품의 수직계열화가 목표다.

이와 함께 중소형기업을 겨냥, 카드, 허브 등 소규모 장비와 사무용소프트웨어를 하나로 묶어 제공하는 패키지사업도 병행할 예정이다.

벤처기업의 고질인 마케팅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새로 전문인력을 영입했으며 유통협력업체도 50여개로 늘릴 방침이다. 이를 통해 2000년에는 1천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신동주 사장은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기술력 하나만을 믿고 있는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은 범국가적인 관심 뿐이다』며 현재 불고있는 벤처기업 열풍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라우터, 허브, 카드 등 장비를 통해 구축되는 네트워크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 다른 분야와는 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약간의 오차만 발생해도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장시간의 정밀진단을 통하지 않으면 파악되지 않는다.

기술과 인력, 자금이 풍부한 대기업도 웬만하면 네트워크 장비 개발에 뛰어들지 않는 것을 상책으로 여기며 몸을 사리고 있는 형편이다.

엄청난 산고 끝에 장비를 개발해도 외국 업체들의 장비에 밀려 잘 팔리지 않아 개발비만 날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자본금 몇천만원으로 시작한 중소기업의 경우 이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아시스템이 국내 네트워크업계에서 「그래도 한아시스템밖에 없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이같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장비 국산화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일주 기자>

[인터뷰] 신동주 사장

한아시스템의 신동주 사장은 자칭 「대책없는 애국주의자」다.

앞 뒤 재지도 않고 네트워크, 통신 기술을 국산화한다고 91년 당시 생소하기만 했던 네트워크분야에 뛰어들었으며 사업가로서 어느정도 자리를 굳힌 지금까지도 이같은 꿈과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82년 아르바이트 시절이었습니다. 신림동 봉제공장의 직공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전자제품과 비교해봤죠. 먼지가 자욱한 골방에서 소리를 내고 있는 라디오 1대를 사려면 얼마나 많은 봉제품이 있어야 하는가를 말입니다. 결국 경쟁력있는 첨단기술과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원론적인 얘기를 몸소 체험했다는 설명이다.

신사장이 네트워크 제품 국산화와 인연을 본격적으로 맺은 것은 「국산화」만을 지향하던 삼우통신공업에서 자동점검시스템(ALS)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될 때부터다.

그후 각종 제품 개발작업을 거치면서 외국 기술자들이 제품을 팔고서도 국내에 원천기술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상했던 경험이 국산화의지를 북돋는 밑거름이 됐다.

결국 자신의 손으로 네트워크장비를 만들기 위해 한아시스템을 설립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항상 동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95년까지도 잘 만들면 팔릴 줄 알았습니다. 국산인데다가 기술력이 뒷받침되는 장비인데 설마 안사주겠느냐는 단순한 생각이었죠. 지난해들면서 저의 생각과 남들의 생각이 다른 걸 알았습니다. 스리콤처럼 유명한 회사의 제품이나 대만산 제품처럼 값싼 제품에 기업들이 길들여져 있었습니다』

95년말부터 96년초까지 한아시스템은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제품은 팔리지 않았고 기술개발 자금은 턱없이 부족했다. 회사규모상 담보도 잡힐 수 없었고 연대보증을 통해 자금을 융통할 수도 없었다. 회사를 팔아버릴까도 생각했다.

그 와중에서 정보통신부의 전국 규모 우편전산망 구축 작업이 시작됐고 여기에 도입된 한아시스템의 터미널서버가 우수성을 인정받게 됐다. 이를 통해 육군전산망에까지 손을 뻗칠 수 있게 됐다. 한숨 돌린 순간이었다.

『벤처기업이요? 사실 기술개발에만 몰두하다 보니 지난해에서야 벤처기업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95년말 몇몇 업체들이 뜻을 합해 벤처기업협회를 만들자고 제의를 해서 참여했는데 상당히 좋은 단체라는 생각입니다』

후배기업은 선배기업으로부터 경영에 대한 컨센서스까지 많은 것을 배운다. 실패경험은 특히 타산지석의 교훈을 일깨우는 데 더없이 좋은 약이다.

『후배기업들이 우를 범하지 않게 하는 게 벤처기업협회의 할 일입니다. 이와 함께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을 마련해주자는 게 협회설립의 목적입니다』

단순히 자금을 대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벤처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자금지원보다는 벤처기업이 자랄 수 있는 환경 정착이라는 설명이다.

신사장은 외과으로 많은 오해를 받는다. 최근에는 직원들의 임금인상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벤처기업은 기술개발이 우선이며 그 다음에 임직원들이 몫을 챙겨야 한다는 저의 생각이 직원들에게 합당하게 이해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고 따라준 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상황이 호전되는 올해부터는 직원들에게 더욱 잘해줄 생각입니다』

<이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