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통신으로부터 교환기 공급자격을 획득한 미국 루슨트테크놀러지사가 당초 우리 실정에 맞도록 기능을 보완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채 교환기를 납품, 이 교환기가 일부 전화국에 설치돼 개통을 앞두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이번 부적격 교환기의 개통은 지난해 국내 업체들이 필수적으로 통과해야하는 인증 절차를 정상적으로 거치지 않고 공급자격을 부여한 데 이은 또 다른 특혜라는 점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루슨트테크놀로지사는 한국통신으로부터 지난해 인증시험에서 불합격한 5ESS2000 일부 항목에 대해 공급 전까지 보완하는 것을 조건으로 입찰자격을 획득했으나 불합격한 기능의 성능을 보완하지 않은 채 최근 수원 연수전화국에 5ESS2000기종 총 1만3천5백 회선을 설치하고 오는 29일 개통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번에 개통할 5ESS-2000기종은 당초 루슨트테크놀러지사에서 약속했던 부적격 기능에 대한 보완작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최근 한국통신이 실시한 성능 테스트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5ESS2000 기종은 종합정보통신망(ISDN) 기능중 3개 항목을 비롯해 3자통화, 회의통화, 부재중 안내 등 부가서비스 기능 7개 항목과 시스템 기능 변경에 따라 재검사를 받은 7개 기본기능 등 총 17개 항목에 이르고 있다.
또한 통신망 고도화의 필수기능인 지능망(IN)기능의 경우에는 루슨트 측이 성능 개선을 포기한 것으로 밝혀져 지능망 기능이 요구되는 시외용 교환기 입찰에는 사실상 참가 자격을 상실한 상태다.
이에 따라 연수전화국 관내 일부 신규 전화가입자들은 당분간 3자통화 등 일부 부가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번 부적격 교환기를 개통하게 된 것은 한국통신의 자발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미국의 대한 통상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교환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지난해 한국통신이 통상 3년여가 소요되는 교환기 구매인증을 생략해 준 것도 엄청난 특혜라는 지적이 많았다』고 전제하고 『더욱이 국내 통신망 구조에 적합치 않은 제품을 일선 전화국에 개통시키는 것은 국내업체에 대한 심각한 불공정 행위』라면서 강력히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5ESS-2000 교환기가 이번 연수전화국을 시작으로 오는 7월 일산전화국에 1만5천5백 회선, 광명전화국에 2만9천6백 회선 등 잇따라 개통될 예정이어서 공급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어질 전망이다.
특히 루슨트측은 한국통신 인증시험에서 통과하지 못한 일부 기능에 대해 『한국통신의 구매 규격이 향후 통신망 발달에 적합치 않다』는 이유를 들어 규격 자체의 변경을 줄곧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교환기 개통을 계기로 미국이 시장개방압력에 이어 규격이나 표준문제까지 문제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대두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통신 측은 『현재 늘어나는 전화수요 때문에 교환기 개통을 미룰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보완되지 않은 기능에 대해서는 루슨트 측이 향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최승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