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연간매출 10억달러가 기업 크기를 나타내는 지표로 쓰인다. 매출 10억달러에 이른 기업은 「1빌리언(Billion)달러 기업」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 된다. 애플컴퓨터, 시케이트테크놀로지는 창업한 지 7년 만에 1빌리언 달러 기업이 됐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는 6년 걸렸다. 이처럼 짧은 기간에 급성장한 예를 다른 국가에서는 찾기 힘들다.
실리콘밸리가 이같은 기업을 배출하게 된 배경에는 많은 벤처투자가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과 대학이나 연구소의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이 활발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빼놓을 수 없는 성장요인은 「인재의 유동성을 높히는 풍토」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가정신이 왕성한 기술자는 누구나 쉽게 이직(移職)한다. 이직을 반복하면서 기술자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넓혀 나간다. 이직을 통해 동일한 분야의 기술자뿐 아니라 그 제품의 공급선과 구매선에 근무하는 기술자의 얼굴을 익히게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벤처 투자가들과도 교분을 쌓는다.
한번 기업을 일으킨 실적이 있는 기술자는 투자가들의 주목을 받는다. 이른바 「실리콘밸리의 스타플레이어」인 셈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스타플레이어가 모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나돌면 금방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쏟아진다.
이 자금을 얻은 기술자는 무서운 기세로 신제품개발에 나선다. 이들의 제품개발계획은 인적자원의 네트워크를 통해 실리콘밸리 전체로 퍼져나간다. 그 결과 제품이 완성될 무렵에는 고객이 장사진을 친다. 이같은 자금과 기술개발의 순환이 생겨나면 창업한 지 불과 몇년 만에 10억빌리언달러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마련이다.
이와 함께 실리콘밸리에서는 매출규모가 10억달러를 넘어서도 급성장을 거듭하는 기업이 있다. 이를테면 일찌기 벤처기업이었던 휴렛패커드(HP)는 매출이 무려 38억4천만달러에 달한 지금에도 연 18%의 고도성장을 누리고 있다. 인텔, 오라클, 실리콘그래픽스 등의 기업도 연 성장률이 2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대기업이 이처럼 연 20% 이상의 성장세을 보이는 것은 전세계적으로 볼 때 아주 드문 경우다.
이들 기업은 아웃소싱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자사의 취약부문을 벌충한다. 즉 이를 통해 기업을 변신시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경쟁력을 갖춰 나가는 것이다. 이같은 아웃소싱은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인수(M&A)에까지 이른다. 최근에는 네트워크 장비업체인 3Com사가 모뎀업체인 US로보틱스사를 인수했다. 또 애플컴퓨터는 컴퓨터 운영체계 개발업체인 넥스트사를 흡수시켰다.
한국의 벤처기업들도 정보통신분야에서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올라서길 원한다면 실리콘밸리의인맥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동시에 더욱 활발한 인수, 제휴에 의해 자사가 갖지 못한 기술을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