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평] 디페쉬모드(Depeche Mode),「Ultra」

서양의 록 인기도와 아시아지역의 록 선호도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정서와 문화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니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서양에서도 록의 양대 출생지인 영국(크게는 유럽지역)과 미국의 기호도 꽤 다른 편이다.

80년대 모던 펑크록밴드로 특히 영국에서 쟁쟁한 라이벌이었던 잼과 폴리스 중 폴리스만이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이 「실패파」 밴드들이 미국시장에 발도 못 붙이고 전멸했다는 것은 아니고 자국에서의 인기만큼 미국시장 공략에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디페시모드 역시 제한적인 팬층을 갖고 있는 영국의 밴드다. 90년대 등장한 밴드들이 대략 얼터너티브로 분류되는 것처럼 80년대 초에 활동하던 영국밴드들은 기존 록뮤직과 다르기만 하면 뉴웨이브로 불렸다. 디페시모드 역시 그 물결 속에서 탄생했다.

비틀스 이후 「제2의 영국인 침공」이란 평가를 받으며 미국시장에 속속 입성했던 그 많은 영국밴드들은 대체로 단명해버렸지만 디페시모드는 그들과 달리 아직도 테크노로 승부하고 있는 몇 안되는 밴드다. 초기에는 아예 전기기타도 배제해버렸을 만큼 철저하게 전자사운드에 탐닉했던 디페시모드는 일렉트로닉, 테크노팝의 계보에서는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테크노는 오래 들으면 질린다는 이들도 있지만 80년대 초반에 이런 음악을 듣고 자란 이른바 X세대 중 가장 윗세대라 할 영, 미의 20대 중반부터 후반의 젊은이 중에는 디페시모드의 골수팬이 많다.

몽환적이고 반복적인 전자사운드에 승부를 걸어왔던 탓일까. 디페시모드의 행보는 그동안 위태로웠다. 지난 93년 대성공을 거둔 앨범 「Songs Of Faith and Devotion」 순회공연 중에는 정신과 의사가 동행하기도 했고 리더싱어인 데이빗 게엔은 마약중독과 이혼에 따른 허탈감 등으로 자살소동을 벌이는가 하면 잇따른 멤버교체로 팬들에게는 후속타에 대한 걱정을 안기기도 했다.

다행히 신보 「Ultra」는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큼 음악적인 면에서 디페시모드의 위상을 다치지 않았고 각종 차트에서는 정상의 자리에 오르는 등 대중적인 면에서도 반응이 좋다.

그들의 음악은 누가 들어도 좋을 만큼 편안한 것은 아니다. 음악이 어렵다기 보다는 테크노뮤직이 지닌 어느 정도의 한계성 때문일 것이다. 테크노가 별로 소개되지 않은 한국에서는 디페시모드의 열렬한 팬을 발견하기 어렵다. 음악적으로 테크노에 많이 경도됐던 일본시장에서는 반응이 좋은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음악기호에 대한 차이는 그들을 통해서도 잘 파악된다.

「Ultra」에서는 이미 「Barrel of a Gun」이 싱글로 홍콩 등지에서 1위를 차지했고 「It’s No Good」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테크노에 낯선 이들은 「Home」같은 곡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데뷔 첫 주에 앨범차트 5위에 올라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박미아 팝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