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기 통산부 기술품질국장은 전자업체 사람들로부터 「말이 통하는 공무원」으로 꼽힌다. 전자업계 관계자들이 산업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을 대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전문 기술을 설명, 이해시키고 첨단 산업 흐름에 대한 정책 방향을 건의하는 것이다. 정책 결정과정 선상에 있는 고위 공무원일수록 법대나 상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 국장이 기업에서 「말이 통한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 탓이다. 서울대와 과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고 미국 유학은 경영학을 했다.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는 물론 기업의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다. 공무원 생활의 대부분도 전자산업 관련 부서에서 보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그를 정보화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전문가 관료」의 전형으로 꼽는다. 구 상공부 과장 시절 기업들로부터 「미스터 컴퓨터」 「미스터 반도체」로 불렸던 백 국장이 최근 국가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되는 벤처산업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주무 국장으로 다시 한번 「손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백 국장은 정부에서 하필 이 시기에 벤처기업을 주목한 이유에 대한 배경을 전환기에 처한 한국 경제의 새로운 「승부수」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그간 한국경제의 성장은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라는 전통적인 양적 성장 패러다임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제는 한계상황이다. 기술 혁신이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비율을 보면 OECD국가의 경우 50% 이상이지만 우리는 20% 정도에 불과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소득 1만달러, 수출 2천억달러의 고비를 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부터는 기술 혁신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적용해야 하고 그 원동력은 기술력을 갖춘 중견기업 벤처기업이 돼야 한다. 국가 경쟁력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벤처기업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고 말했다.
백 국장은 『현재 1천5백개 정도인 벤처기업의 수를 오는 2000년까지 4만5천개 수준으로 확대하고 이중 약 1천개 기업을 연간 수출 1억달러 이상 규모로 육성, 선진형 산업구조를 정착시키겠다』고 말하고 『정부는 벤처기업의 자생력을 배양하기 위해 인력, 정보, 산학연협력 등 인프라 구축을 통한 여건 조성과 금융부문으로 대표되는 지원제도 확충 및 규제 완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기업들의 체감지수가 중요한 금융부문과 관련, 정부는 각종 지원 시책을 마련, 발표하지만 정작 은행 창구에서는 「모르쇠」로 일관, 정책 신뢰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번 육성전략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백 국장은 『부동산 담보에만 치우친 우리 금융관행의 현실적 문제점을 알고 있다. 거기에는 기술력이 뛰어난 벤처기업의 기술을 담보로 대출을 실행할 만큼 해당 기술을 평가 분석할 수 있는 기법과 전문인력의 부재가 큰 몫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률적으로 이미 보완작업을 끝냈다. 또 지적재산권과 기업의 노하우를 평가하는 기법 역시 정부 산하기관에서 뒷받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올해 통산부는 약 2백억원 가량을 벤처기업에 지원하고 대손발생시 70%까지 정부가 보상해 주는 방안을 강구, 기술력과 기업 노하우라는 기술담보로도 금융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제도는 시범기간을 거쳐 전 금융기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한다.
백 국장은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술혁신의 주체인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며 기업은 나름대로의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한 창조성과 도전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경영 및 조직관리 기법 확보에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백만기 국장이 기업체로부터 「미스터 컴퓨터」 「미스터 반도체」로 불리는 것은 유명한 몇가지 사례가 「입증」해 준다. 그는 반도체과장 시절인 지난 92∼93년 한미 반도체 덤핑 협상을 성공리에 마무리,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 미국은 국산 반도체에 대한 엄청난 비율의 덤핑 예비 판정을 내렸고 수조원을 투자한 국내기업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주무과장으로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잠 못자는」 준비와 「피말리는」 협상을 거듭한 끝에 판정률을 1백분의1 수준(0.75%)으로 낮추는데 성공했다. 유례없는 통상협상의 성공사례였다. 물론 그 이후 국내 업체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반도체 신화」를 낳았다.
용인 소프트웨어 단지 역시 그를 평가할 때 자주 등장한다. 계획 입안 단계부터 「부동산 투기」다 뭐다 해서 이견이 많았지만 그는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직을 걸고」 추진했다. 용인에서는 지금 한창 공사가 진행중이다. 백 국장은 5급 실력의 바둑과 「홀로 하는 등산」이 취미이다. 하지만 즐길 시간은 없단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일 중독」이라고 농담을 건낼 정도이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질문에는 『다행히 부인이 약사』라는 말로 대신했다.
<이택기자>
백만기 국장 약력
.1954년 출생
.1976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8년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전자공학과 졸업(공학석사)
.198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경영학 석사)
.1989∼96년 통산부 정보기기과장, 정보진흥과장, 반도체산업과장, 산업기술정책과장
.1996년 특허청 항고심판관
.97∼현재 통산부 기술품질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