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IC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메모리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이 결코 비메모리를 못해온 것이 아니라 메모리를 너무 잘해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비메모리 육성책을 세울 수 있는 배경에는 바로 메모리산업 기반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김용도 LSI로직 한국지사장)
『당시 메모리산업은 시대적 요구였고 민, 관간에 잘 맞아떨어진 전략이었다. 만약 당시의 취약한 인프라를 무시하고 우리가 비메모리사업부터 드라이브했다면 반도체산업은 아예 뿌리조차 내릴 수 없었을 것이다』(통산부 전자부품과 전경석 서기관)
「이제 시작할 때이고 할 수 있는 시기」라는 게 국내 비메모리산업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접근 방식이다. 『이제까지 시스템업체와 반도체업체간 대화채널이 거의 전무했다. 이는 비메모리에 필요한 요소기술을 무조건 해외에서 사다 쓴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그래픽처리기술 등 특정분야에서는 우리 엔지니어들이 해외전문인력보다 우수한 경우가 많다. 세트업체들의 이같은 행동은 시장 적시대응이라는 점에서 이해는 가지만 무조건 요소기술을 사다쓰면 다음 기술도 역시 해외에서 도입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서승모 C&S테크놀러지 사장)
국내 비메모리 산업육성책을 애기할때 접근방법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역할분담론이다. 비메모리산업의 핵인 기술인프라는 관계당국이 앞장서 대학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기초기반 기술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코어 및 디자인 기술은 전문 중소업체가 맡으며 대기업은 이들 중소업체들이 확보한 요소기술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다는 청사진이다.
새로 주목되는 대목은 바로 벤처기업의 역할이다. 『비메모리는 대표적인 무빙타깃 시장으로 수요업체의 요구에 맞는 디자인기술을 통해 시장을 개척해나가는 상품이다. 한마디로 발빠른 기술대응력과 창의력이 요구되는 분야다』(최민성 LG반도체 상무)
벤처기업육성을 위한 현재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국내 비메모리산업 부흥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업계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대단위 투자를 통해 단기적인 결실을 보고자하는 대기업 특유의 접근 방식으로는 비메모리사업 성공은 미지수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착실한 기반위에서만 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 바로 벤처기업이 이같은 요소기술을 나름대로 축적,발전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반도체공동연구소 박영준 소장)
『메모리처럼 타깃을 너무 크게 보는 것도 위험하다. 현재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연간 47억달러의 비메모리를 수입대체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특히 아남,한국전자,대우,광전자 등 전문업체들에 대한 지원강화와 함께 반도체업체와 「디자인 인」 같은 시스템업체간 유기적인 채널 구축도 보다 심도있게 강구돼야 할 부분이다』(반도체산업협회 김치락 부회장)
『향후 시장은 복합칩시대다. 메모리에 로직기능을 부가하든 로직에 메모리기능을 부가하든간에 세트의 소형화, 고기능화를 충족시키는 복합칩 기술은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이상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무의미하다』(삼성전자 시스템LSI 김상옥 이사)
『거듭 지적되는 얘기지만 무엇보다 비메모리라는 단어를 안쓰는게 중요하다. 메모리적 발상에서 벗어나 비메모리산업에 제대로 접근하기 위해 명칭을 바꾸고 체계화시키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라고 본다』(산업연구원 주대영 선임연구원). 이에따라 현재 거론되는 새로운 명칭은 시스템LSI,시스템IC,시스템인터그레이팅IC(SIIC) 등이다. 한결같이 시스템의 성능을 좌우하는 반도체의 기능을 강조한 것들로 업체나 기관마다 약간씩 다르게 사용되고 있으나 기본 의미가 비슷해 통일, 체계화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많은 이들이 올해를 국내 비메모리산업의 실질 원년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업계의 투자의지는 물론 관계기관의 지원의지 또한 강력하다. 『첫 단추를 잘 꿰야하듯 용어정리부터 산, 학, 연 역할분담까지 차근차근 해결해나간다면 메모리에 버금가는 또 다른 「신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이번만큼은 결실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