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은 음성, 데이터, 영상자료 등을 포함하는 개념을 가진 우리말 신조어다. 정보사회의 삶의 변화는 매우 빠르고 때로는 며칠 앞을 예측하기조차 어렵게 한다.
우리 모두는 물질이 풍요로운 산업사회를 지나 정보사회로 진입하며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옛날 옛적에는 인류에게 말이 있어서 다른 동물과 구별되었고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되었다. 농경사회는 아마도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마을의 어른들은 농사의 때와 방법을 자자손손 구전하여 동물과 다른 농경문화를 창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글을 쓰기 시작하고 특히나 인쇄술의 발달은 우리의 문화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말은 그 내용의 전달과정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지만 글은 문자화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인간의 사고를 널리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알 수 있게 되고 글을 통해 우리는 오래 전 성현들의 가르침을 쉽게 배우게 된 것이다.
특히 산업사회는 글의 혜택을 톡톡히 보게 되었다. 글은 모든 자연현상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관계없이 기록할 수 있었다. 글에 의한 정확한 표현은 기계문명의 발달을 촉진시켰고 산업사회의 물질적인 풍요를 맛보게 했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 컴퓨터와 통신의 눈부신 발전으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고 또한 인간의 간격을 급속히 좁히는 새로운 사회, 즉 정보사회에 진입하게 되었다.
농경, 수렵사회의 말, 문명이 발달하여 풍부한 물질을 제공받은 산업사회의 글에 대응하는 정보사회를 대표하는 우리 말의 핵심단어로는 무엇이 있을까. 멀티미디어는 말, 글, 데이터, 영상자료 등을 포함한다. 우선은 멀티미디어를 포함하는 순수한 우리말을 찾아보았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말은 인간 사고의 중심에, 글은 말을 중심으로 말을 감싸며 우리의 사고를 이끌어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정보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개념이 말과 글을 중심에 놓고 말과 글을 감싸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개념의 용어를 「볼」이라 불러본다. 새로 지어낸 볼은 얼굴의 볼따구니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야구공의 볼도 아니다. 볼은 「보다」의 형용사형이다. 우리말을 잘 살펴보면 보다의 용도가 여러 곳에 쓰임을 알 수 있다. 예배보다, 살펴보다, 맛보다, 선보다, 장보다 등. 우선 가장 보편적인 뜻은 「사물의 모양을 통하여 알다」이다. 「집을 보다」할 때는 집을 보살펴 지킨다는 뜻이고, 「사무를 보다」는 일을 맡아서 한다는 의미다. 또 「며느리를 본다」는 며느리를 얻어들인다는 뜻이고, 「상을 본다」는 뜻은 음식상을 차린다고, 「합의를 본다」는 뜻은 어떤 결과에 이른다는 뜻이다.
옛날에도 음악이 있었고 미술이 있었다. 그러나 음악이 통신의 발전에 따라 시공을 초월하게 된 것처럼 이제는 미술이, 영상예술이, 삼차원의 예술이 볼문화를 통해 통신과 컴퓨터의 발전에 따라 시공을 초월하게 되었고 인간의 사이를 훨씬 더 가깝게 하며 정보사회를 선도하게 되었다. 말하고 듣고 보는 것이 시공을 초월함에 따라 이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시공을 뛰어넘어 훨씬 더 가깝게 된다.
앞으로는 독자 모두가 정보사회의 한 가운데에서 「볼」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용어가 의미를 더해가기를 바란다. 「볼」은 보다는 뜻의 형용사가 되며 사물의 모양을 눈을 통해 알려 하고, 보살펴 지키고, 일을 맡아서 하고, 얻어들이고, 차리고, 결과에 이르는 일들이 다 「볼」 일이다. 볼문화를 통하여 우리의 것이 소중한 것이 되고 우리 사이가 가깝게 돼 우리의 문화가 꽃 피어가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李鐘熙 모다정보통신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