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카세트의 밀수품이 국내 전자상가를 뒤덮고 있다. 용산전자상가나 세운상가에는 거의 모든 매장마다 밀수된 헤드폰카세트를 판매하는 매대가 설치돼 있다. 최근 국내 업체들이 일제 헤드폰카세트에 맞서기 위해 신제품을 내놓고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만 밀수품들은 일본의 높은 브랜드 인지도를 등에 엎고 세금도 내지 않은 채 싼 값으로 판매되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헤드폰카세트 밀수는 전문적인 밀수꾼에 의해 조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정부의 단속은 역부족이며 제조업체들 역시 뾰족한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어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는 국산 헤드폰카세트가 위기에 처해 있다. 헤드폰카세트의 밀수실태와 정부 및 국내업체들의 대응 동향 등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5월22일 저녁 7시15분 부산 국제여객터미널. 이제 막 일본 시모노세키로 출항한 페리호 여객선에는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들은 소위 「보따리 장수」라고 불리는 전문 밀수꾼들이다. 이들의 가방 속에는 우리나라에서 나는 각종 특산물들이 가득하다. 보따리 장수들은 이 물건들을 일본에 내다 판 뒤 그 돈으로 이케부크로, 아키하바라 등 유명 전자상가를 돌며 헤드폰카세트, 캠코더 등 부피는 적고 값은 비싼 전자제품들을 가방에 가득 채워 온다. 일본 전자상가에서는 유통업자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소니, 마쓰시타 등이 재고 처분을 위해 넘긴 헤드폰카세트를 싼 값으로 판매하고 있으며 대량 구매고객들에게는 더욱 싼 값으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밀수업자들은 이들로부터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다. 헤드폰카세트의 경우 가방 하나에 최대 2백대 가량이 들어갈 수 있다.
이 물건들은 국내 유통조직을 통해 서울 용산전자상가, 세운상가 및 전국 대규모 전자상가 등지로 공급돼 세금 한푼 내지 않고 판매된다.
현재 우리나라엔 이같은 보따리 장수 들이 3백여명 가량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특히 헤드폰카세트만을 전문적으로 밀수하는 이들은 약 70명이며 이들은 평균 1주일에 한차례씩 일본을 왕래하며 헤드폰카세트를 밀수한다.
이들이 1년에 밀수하는 헤드폰카세트는 약 1만대. 70명이 연간 1만대씩 헤드폰카세트를 밀수할 경우 연간 70만대 가량이 밀수되고 있다는 계산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헤드폰카세트 시장을 밀수품을 포함해 1백70만대로 추정할 경우 밀수품이 국내시장의 41% 가량을 차지한다. 여기에 공식절차를 밟아 수입되는 일본산 및 동남아산 헤드폰카세트를 포함시킬 경우 외산 제품이 국내 시장의 50%를 넘게 차지한다.
일제 헤드폰카세트가 밀수인지 아닌지를 식별하는 것은 간단하다. 밀수품들은 대부분 포장박스 없이 판매된다. 밀수업자들이 헤드폰카세트의 부피를 줄여 보다 많이 들여오기 위해 포장박스는 내다 버리기 때문이다. 헤드폰카세트용 충전지를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1,2년 전부터 장시간 재생을 위해 1천mA 이상의 용량을 가진 충전지를 사용하지만 밀수품에는 몇년전 모델인 6백mA 용량의 충전지가 들어간다. 밀수업자들이 구입단가를 낮추기 위해 값이 비싼 대용량 충전지 대신 값싼 6백mA 용량의 충전지를 구입하기 때문이다.
싼 맛에 밀수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은 제조업체의 품질보증서가 없기 때문에 잔고장에도 비싼 AS비용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들뿐이 아니다. 헤드폰카세트를 생산하는 국내업체들도 판매저조가 매출감소, 이익감소, 재투자비 감소 등에 영향을 미쳐 장기적으로 신제품 투자비용까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헤드폰카세트의 밀수단속을 정부에 여러차례 요청했지만 정부는 용산전자상가를 대상으로 형식적인 단속만 실시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밀수품의 뿌리부터 차단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