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에인절 캐피탈리스트

최근 프랑스를 방문, 생명공학 분야의 벤처기업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이번 여행에서 필자는 프랑스 벤처기업들이 미국만큼 활발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프랑스는 포도주와 치즈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인 것에서 보듯이 발효학 등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는 그 뿌리가 매우 깊다고 할 것이다. 프랑스 대학들은 또 파스퇴르연구소 등과 같이 전통있는 연구기관과 공동으로 그동안 분자생물학 등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왔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의 설립이 90년대 들어 줄을 이었고 현재 생명공학분야에서만 그 숫자가 1백여개사에 달한다.

생명공학분야 벤처기업의 한가지 큰 특징은 이들이 대부분 제품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분야 벤처기업은 대부분 소프트웨어 등의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데 비해 생명공학 분야 기업들은 최종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투자비를 회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들은 그대신 가능성을 상품으로 내세워 모험자본가를 영입하거나 대기업과의 전략적인 제휴 등을 통해 필요한 연구비를 조달한다.

이번에 필자가 방문했던 플라멜사의 경우에도 매년 큰 폭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장외 주식시장으로부터 연구에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하고 있었다. 약물이 소화액 등에 의해 파손되지 않고 1백% 환부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액(제약회사로부터 미리 받은 기술사용료, 3백만 달러)의 2배에 달하는 6백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주식을 모두 장외시장에 팔아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처럼 성공 가능성만으로도 벤처기업이 충분히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벤처 붐이 일면서 생명공학분야에서의 창업이 줄을 잇고 있다. 생명공학연구소의 박한오씨가 지난 92년 유전자 연구에 필요한 장비와 시약 제조업체로 설립한 바이오니아사의 경우 현재 장외시장에서의 주식값이 액면가의 10배를 호가하고 있는데 이 회사 관계자들은 내년에 기업을 공개하면 주가는 더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박 사장은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것으로 알려지자 그동안 외면했던 모험자본가들까지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형편이라며 국내 벤처산업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벤처기업가들도 어느 정도 성공이 보장된 기업에 대한 투자보다 앞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가진 기업을 조기에 발굴,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선진국에서는 투자의 개념도 시세차익을 노리는 주식투자에서 첨단기술의 가능성에 대한 투자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능성에 대한 투자는 복권을 사는 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우선 벤처기업 20개 중에서 크게 성공하는 기업은 1,2개에 불과하고, 겨우 현상유지하는 기업이 절반 정도라는 점에서 높은 당첨금이 일등에 몰려있고 나머지 50% 정도는 본전 정도를 되돌려받는 복권과 비슷하다.

그러나 복권은 단순히 확률에 의해 당첨이 결정되지만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는 기술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한단계 더 높은 차원의 복권놀이로 비유할 수 있다. 특히 생명공학에 대한 투자는 잘 되면 큰 돈을 벌고 실패해도 인류복지를 위한 연구에 기부했다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미국의 갑부들은 생명공학분야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매우 좋아 한다고 한다. 만약 지금까지 취미삼아 복권사기를 즐겼던 분이라면 앞으로는 그 돈으로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에인절 캐피털리스트」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林載春 과기처 화공조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