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 그 현장을 가다 (5)
95년 10월 제어시스템 업계에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참가한 전화국 전원집중관리시스템(전화국에 정전이 발생했을 때 자동적으로 백업전원을 관리해 주는 비상시스템) 입찰에서 들어 보지도 못한 벤처기업이 공급권을 수주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스템은 수억원을 웃도는 고가 장비일뿐 아니라 내년부터 전국 5백67개 전화국에 공급하게 되면 시장규모가 1천3백억원에 이르는 대형 프로젝트다.
당연히 업계에서는 우려의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기술개발 내용을 놓고서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창업 2년의 병아리기업이 대기업과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를 거두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한 곳이 바로 우리기술(대표 김덕우)이다.
「우리기술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다부진 각오로 93년 설립된 우리기술은 연구개발직 36명중 박사급이 8명, 석사급이 9명일 정도로 고급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컴퓨터통신, 하드웨어시스템, 계장제어시스템 설계에 관한 기술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짧은 연륜에도 불구하고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분산제어, 계측, 감시분야에서 ABB, GE, 웨스팅하우스 등 굴지의 선진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특히 지난해 1월에는 장영실상 수상업체 가운데 우수업체에 주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제어에 관한 일이라면 해결하지 못하는게 없다.
93년 원자력발전소 관련 시스템이 외국산이라는 점에 울분을 느껴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선후배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한 우리기술 직원들의 평균연령은 27세. 지난해 매출액은 15억원에 불과하나 내년에는 4백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다.
당시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원자력발전소 디지털경보장치 공급사업에 단지 제안서 하나만 들고 경쟁에 나서 당시 국내업체로서는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던 포스콘을 제치고 공급권을 획득, 6개월 만에 개발 완료해 업계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김덕우 사장은 젊은 가슴 하나로 해낸 쾌거였다고 회상했다.
94년 총 4억원의 연구비를 투입, 원자력발전소 운전제어설비의 하나인 「디지털 경보장치」를 국산화해 영광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 처음 설치한 이후 영광 원자력 1, 2호기, 고리 원자력발전소 3, 4호기에 설치하는 등 지금까지 40여건의 대형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디지털 경보시스템은 원자력발전소의 각종 운영정보 및 동작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운전을 감시하는 핵심시스템으로 1천분의 1초 단위의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우리기술이 개발한 시스템은 경보입력의 단위시간당 처리량, 경보입력과 출력사이의 신호전달 지연시간 등에서 외국제품에 비해 우수하고 자기진단상태 표시기능, 3중 백업구조, 경보장치의 처리절차 표시기능 등 기존 외국 제품에 없는 기능을 갖고 있다.
이 기술로 지난해 1월 최우수 장영실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데 이어 국산 신기술마크와 원자력연구소로부터 유망 중소기업 지정을, 한국전기전자시험연구원으로부터 품질보증업체로 지정받았다.
우리기술은 이를 바탕으로 최근 20억원 규모의 영광 원자력6호기의 입찰에 외국업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한 LG산전, 현대중공업과 경합중이며 6월 초로 예정된 고리 원자력1호기 주전산기 교체사업 입찰에 참여, 웨스팅하우스, 폭스보로, 미쓰비시 등 세계 유수 업체들과 한판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우리기술은 지난 3년간의 기술축적과 현장경험으로 올해부터는 그동안 외국업체에 내줬던 안방시장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우리기술은 이를 바탕으로 올해부터는 한국통신이 전국 전화국에 1천4백억원을 투입해 3개년에 걸쳐 설치할 예정인 교환기 전원 감시제어시스템 공급업체 가운데 하나로 선정돼 자사가 개발한 경보시스템과 이 시스템의 핵심부품인 VM보드 등을 업체들에 공급키로 돼 있어 이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보급될 내년 이후 4백억~5백억원 정도의 매출을 자신하고 있다.
우리기술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외국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의 각종 제어장비와 공장자동화용 분산제어시스템의 완전 국산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소량다품종 시대에 맞춰 국내 제조업체의 실정에 맞는 전용제어기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우리기술은 올들어 사업부를 개편, 정보통신분야에서도 자신들의 역량을 활용해 도전장을 낼 생각이다.
우리기술은 무선통신부문을 제어시스템에도 적용해 나가는 한편 오는 6월말께는 고속페이저를 선보이고 연말에는 세상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휴대통신시스템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이달말께 10여명으로 무선기술사업팀을 설치할 계획이다. 기술예측이 맞아 떨어지면 성공이고 시장반응이 시원찮아도 기술축적 경험이 있어 투자비용이 아깝지만은 않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기술은 특히 무선기술을 활용한 교통관제시스템과 원격검침시스템 시장에 진출키로 하고 최근 미국 방위산업체로부터 기술 소싱을 시도, 오는 6월 시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우리기술이 선보일 교통관제시스템은 출력 5㎽급의 저출력 무선시스템을 응용, 반경 1.5~8㎞까지의 교통신호시스템을 무선으로 연결해 교통량에 맞게 신호주기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서울 봉천동 허름한 빌딩에 11평짜리 사무실에서 4명의 두뇌가 술자리에 모여 「독자기술로 외국으로부터 기술종속에서 벗어나자」며 의기투합해 설립한 회사가 어느덧 종업원 54명의 내년에는 매출 3백억원의 당당한 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
<정창훈 기자>
[인터뷰] 우리기술 김덕우 사장
『무한한 창의력과 도전의식이 없으면 벤처기업의 수명은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항상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어렵다는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부모 몰래 겁없이 험한 사업의 길로 들어선 우리기술 김덕우 사장(35)은 벤처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김 사장이 사업의 길로 나선 동기는 극히 단순하다.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할 때부터 교수보다는 사업가가 체질에 맞는 것 같았다고. 그후 후배들과 술마시는 자리에서 기술종속을 한탄하면서 의기투합, 박사학위를 받은 93년초 일을 냈다. 노선봉(32), 노갑선(32), 박정우 박사(31)와 이재영(29)씨 등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후배들과 우리기술을 창업한 것이다.
초기 설립자본금 5천만원은 대학원시절 삼보컴퓨터의 레이저프린터보드를 개발해주고 받은 돈으로 충당했고 사업경비는 자체조달한다는 원칙이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다.
다국적기업인 ABB사를 모델로 벤치마킹을 연구중인 김 사장은 10년 후 산업전자부문과 정보통신부문 사업을 총괄하는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는 게 목표다.
김 사장은 1.5라는 숫자를 좋아한다. 따라서 휴가도 1.5일을 권장한다. 1.5일 휴가란 숙박과 교통편에 드는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고 직원들은 자신이 원하는 휴식장소에서 24시간 푹 쉬고 다음날 오후에 출근하는 제도다.
3∼4년 후를 겨냥한 모험상품 개발비도 1억5천만원이다. 이 정도 금액이면 비록 개발제품이 사장되더라도 그 금액 이상의 기술축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방식도 개방적이다.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식견과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틀에 박힌 사업계획서나 격식은 필요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
따라서 3인1조나 2인1조로 이루어진 팀장에게 대부분의 결정권을 주고 있다. 특히 보고의 80% 이상은 구두로 처리하고 문서작성을 할 경우에도 A4용지 한장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 집안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않는다는 인사원칙도 정해놓았다.
그는 창업 때의 약속대로 가족은 물론 은행에 손을 내밀어 본 적이 없다. 정보화추진기금, 중소기업 지원자금 등 정책자금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자본금을 4억5천만원으로 늘리면서 장은창업투자 등 2개 창업투자회사에 지분의 10%를 떼줬다.
그의 지분은 창업멤버 가운데 제일 많기는 하지만 후배들과 앞자리수가 같다. 더불어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지분에 대한 욕심은 크게 없다.
김 사장은 현재대로라면 오는 99년에는 주식상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근 일고 있는 벤처기업 붐에 대해서는 『돈보다는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이나 사업분야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올들어 그동안 쌓아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속페이저, 기지국감시시스템, 무선통신사업 등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여기에서 만족할 수 없지요. 국내 발전소의 모든 제어계측시스템을 우리의 기술로 바꿔 나가는 것이 꿈입니다.』
그는 우리기술로 세계를 제패한다는 야무진 꿈을 하나하나 실천해 가고 있는 당찬 젊은이다.
<정창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