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율 자동판매기가 업계의 민감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고효율 자판기란 한전이 전력피크를 막고 전력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자동판매기 업체에 개발토록 한 제품으로, 냉음료용 자판기의 성능과 효율을 향상시키고 제어방법을 개선한 제품. 당초 한전 개발과제에는 LG산전과 롯데기공, 해태전자 등 자판기 관련 대기업이 모두 참여했으나 LG산전과 롯데기공 2개 업체만이 개발에 성공, 제품을 출시했다.
양사의 제품은 우레탄 재질을 사용, 단열효과가 우수해 전력사용량을 줄였다. 또 오전시간대에는 과냉운전을, 오후시간대에는 냉각정지 운전인 피크컷 운전을 하도록 설계함으로써 하절기 전력 과다사용에 따른 전력피크를 막는 데 기여하게 한 제품이다.
그러나 고효율 자판기는 이러한 장점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급에는 난항이 예상된다.
첫번째는 기술적인 문제다. 냉음료 자판기는 위치(로케이션)에 따라 판매량의 편차가 크다. 따라서 냉각정지 운전시간대인 오후 1시30분에서 4시 사이에 냉음료가 품절됐을 경우 새로 투입되는 음료는 청량감이 떨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제조업체와 한전측은 새로 음료가 들어올 경우 통상운전으로 되돌아가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고효율은 커녕 오전시간대의 과냉운전에 따른 전력추가로 오히려 전력이 더 소비된다. 따라서 오후 4시까지 품절이 되지 않아야 제대로 효과를 본다.
두번째는 수요, 공급의 문제다. 캔음료 자판기의 주요 수요처는 국내 음료업체인데 이들의 고효율 자판기에 대한 태도가 심상치 않다. 좋은 제품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구매는 좀 더 두고 보자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냉매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고 재질도 단열효과가 높은 것으로 대체한 만큼 자판기 제조원가는 당연히 상승한다. 한전은 고효율 자판기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신상품 가격을 기존 제품과 동등하게 책정하고 개발비용을 한전이 제조업체에 보상키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음료업체들의 반응은 매우 민감하다. 국내에 보급된 캔자판기의 대부분은 음료업체가 자사 음료의 판매를 장려하기 위해 실수요자에게 임대해주고 있는데, 실수요자가 전력절감을 이유로 자판기 교체를 원하면 바꿔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음료업체들의 판매경쟁이 치열한 점을 감안하면 실수요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처지는 못된다.
음료업체들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실수요자가 신규물량뿐만 아니라 멀쩡하게 운영되고 있고 수명도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기존 자판기까지도 고효율 자판기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전국에 보급된 캔자판기는 어림잡아 10만여대로 추산되는데 이들 자판기를 모두 고효율 자판기로 바꾸는 데 대당 3백만원씩 계산해도 3천억원이 소요된다. 음료업계에서 캔자판기 시장점유율 1위로 알려져 있는 L음료회사의 경우 전국에 약 2만5천여대의 캔자판기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를 모두 고효율 자판기로 바꾸려면 7백50억원이 든다.
한전은 실제로 신규물량은 물론 이미 보급된 자판기에 대해서도 고효율 자판기로 교체하도록 유도해나갈 방침이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고효율 자판기 보급확대를 위해 건물주나 실제 운영자 상대로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이미 보급된 캔자판기의 수명이나 처리방법 등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음료업체를 비롯한 대규모 운영업자들은 이미 보급된 자판기에 대한 활용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신제품 구입시 드는 비용을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 등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캔음료 자판기가 그동안 여름철 전력수급난을 부채질해왔다는 비난을 올해는 면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