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폰카세트의 밀수는 조직적이며 대규모로 행해지고 있는 데 비해 정부나 국내 업체들의 대응은 단편적, 형식적이어서 보다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나가보면 거의 모든 가전제품 전시장마다 앞부분에 일제 헤드폰카세트가 빼곡이 차 있는 매장이 설치돼 있다. 이 제품들이 밀수품이란 사실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매장마다 보유하고 있는 일제 헤드폰카세트는 평균 1백대. 용산전자상가에서만 몇만대의 밀수품이 돌고 있다. 소비자들 가운데에는 밀수품이 예상외로 많은 것에 놀라지만 정부의 단속은 미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밀수된 헤드폰카세트가 국내 유통망의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밀수된 헤드폰카세트는 용산이나 세운상가 및 지방 전자상가 등 비교적 한정된 곳에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유통시장이 개방된 이후 다양한 형태의 유통매장이 들어섰고 유통업체들간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밀수품이 백화점, 대형 할인매장으로까지 침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백화점에서도 버젓이 밀수품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매장에 전시된 제품은 정식 절차를 밟아 수입된 제품이지만 실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제품은 밀수품이라는 주장이다. 또 경기도 지역의 일부 할인매장에서는 원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으로 일제 헤드폰카세트를 판매하고 있다. 10만원대의 일제 헤드폰카세트가 3만원 가량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제품들이 밀수업자들로부터 공급받은 밀수품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처럼 밀수된 헤드폰카세트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지만 정부의 단속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비체계적이며 단편적이라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밀수품이 집중 유통되는 용산상가를 단속한 적이 몇번 있었으나 상인들은 대부분 사전에 단속정보를 입수해 진열대에서 밀수품을 빼고 국산 제품으로 교체해 정부의 단속망을 피해왔고 단속이 끝나면 다시 밀수품을 진열하는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단속효과도 없고 밀수업자들 역시 단속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현상이 생긴 것이다.
이에따라 업계에서는 이같은 형식적 단속보다는 밀수 루트를 차단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될 것이라고 제시한다. 일제 헤드폰카세트의 밀수 통로인 부산 세관에서부터 밀수품을 철저히 가려내 이를 차단하지 않는 이상 밀수품의 근절은 어렵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밀수꾼들과 정부 세관공무원들간에 유착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하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조직적으로 대량의 밀수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헤드폰카세트에 대한 특별소비세 폐지 혹은 개정 등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도 필요한 실정이다. 현재 헤드폰카세트는 대기업들이 판매하고 있지만 실제 제조업체들은 국내 중소기업들이다. 특별소비세 부담을 중소기업들이 안고 있는 것이다. 국내 중소업체들은 밀수품 범람으로 가장 피해를 본 당사자들이다. 지난해 대기업에 헤드폰카세트를 공급해왔던 한 업체가 국산품의 시장위축으로 문을 닫았고 일부 업체는 다른 품목으로 주력사업을 전환한 것도 정부의 정책부재라는 지적이다. 중소 카세트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세원확보에 혈안이 돼 국내 산업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제조업을 그만 두고 유통업에 참여할 생각』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도 경쟁업체들끼리, 대기업과 중소기업들끼리 협력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헤드폰카세트에 대한 공동 특허, 공동개발, 부품표준화 등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내업체들도 일제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업체들간 신경전을 그만두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서로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