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TV, VCR 등 각종 영상기기에서 컬러신호와 흑백신호의 시차를 조절,화질을 안정시키는 지연(딜레이)부품으로 채용돼온 딜레이라인(일명 LC필터)이 국내에서 서서히 사장길로 접어들고 있다.
국내 가전산업의 최대 부흥기였던 80년대 중반 이래 별도의 부품군을 형성하며 나름대로의 입지를 구축했던 딜레이라인이 최근 가전시장의 위축과 해외생산 가속화라는 전자산업 구조조정과 일반부품의 마이컴 내장화 추세에 따라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것.
업계에 따르면 과거만해도 컬러TV를 기준으로 대당 적어도 2~3개씩은 채용됐던 딜레이라인은 현재 일부 대형제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능이 마이컴 속에 내장돼 수요가 지극히 한정돼 있으며 VCR 역시 대부분의 부품이 칩화되면서 딜레이라인 시장이 거의 고갈된 상태다.
이에따라 부품업계에서 딜레이라인을 생산하는 곳도 한국TDK와 쌍신전기 등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이며 그나마 쌍신의 경우는 올들어 수요가 작년의 40% 수준으로 줄어들어 월 50만개 정도를 생산하고 있으나 채산성 문제로 중국공장으로 라인을 모두 이전했다.
수요가 경제 단위에 훨씬 못미치는 수준으로 줄어든데다 가격도 현재 개당 30센트선으로 곤두박질쳐 단종이 불가피한데도 소량이나마 생산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기존 고객과의 관계 때문이라고 딜레이라인업체들은 말한다.
쌍신전기 한 관계자는 『82년에는 딜레이라인을 개발했다는 공로로 대통령상까지 받았으나 이젠 찬밥신세가 될 정도로 시대가 변했다』며 『일반부품의 마이컴화는 자연스런 현상이란 점에서 예견했던 일로 이제 딜레이라인의 사장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각종 일반부품의 마이컴화는 최근들어 눈에 띄게 가속화돼 특정 전자제품에 채용되는 부품의 단위수량이 크게 줄고 있다. 이로인해 비단 딜레이라인 뿐만 아니라 많은 회로부품업체들도 최근 절대수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결국 딜레이라인의 자연스런 사장길은 인쇄회로기판(PCB) 하나에 몇개의 마이컴,혹은 마이컴의 조합형인 멀티칩모듈(MCM) 하나로 구성된 이른바 차세대 「원칩 전자제품」으로 가는 아주 초보적인 조짐으로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