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전자3사의 가전사업이 지금처럼 성장한 데에는 「가전대리점」이라는 전속 유통망이 든든하게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전자3사가 가전사업을 해외시장으로 급속히 뻗어가고 있는 것도 내수시장에서 전속대리점이라는 안정적인 판매망을 통해 사업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즉 전자3사의 전속 가전대리점은 세계화를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 주역을 맡아왔다.
그런데 이런 가전대리점이 몸살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경기침체로 판매가 부진해 겪는 일시적인 몸살이 아니라 국내 유통시장의 구조적 변혁기속에 휘말려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중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이제는 전속대리점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가전대리점이 위기에 봉착한 데에는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주요 상권에 들어서고 있는 대형 할인점들의 출현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요즘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는 대형할인점에 가면 공장도가격 이하로 판매하는 가전제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에는 가전제품을 공장도가격 이하로 구입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대형할인점들의 이같은 저가공세로 가끔 고급백화점내 가전매장에서도 공장도가격 이하로 판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전시장도 프라이스클럽, 킴스클럽, 카르푸, 마크로 등 국내외 대형 할인점들이 생겨나면서 가격파괴 현상을 빚고 있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들 대형할인점은 백화점처럼 다양한 상품을 구비, 원스톱 쇼핑을 가능케하고 자체적으로 AS체제까지 갖춰나가는 추세여서 가전대리점의 입지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이에 비해 지역별 밀착영업을 주무기로 삼아 전국 4천여군데에 뻗어있는 전자3사 가전대리점들은 전속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하나의 브랜드만 취급하고 있다. 대형 할인점들처럼 공장도가격 이하로 판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백화점식 경영노하우를 지닌 대형 할인점과 단순히 전자3사로부터 제품을 공급받아 판매해온 가전대리점은 제품구매(소싱)력에서 부터 물류, 재고관리 등 전반적인 경쟁요소 측면에서 비교상대가 못되기 때문이다. 아직은 점포수에서 가전대리점이 절대 우위를 지키고 있지만 대형 할인점들이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점포를 확대해가고 있어서 풍전등화의 위기를 느끼는 대리점들이 많다.
또 이러한 가전대리점들의 열세는 곧바로 전자3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자3사는 그동안 전속대리점체제를 유지하면서 가전제품 가격을 제조업체 중심으로 이끌어 왔지만 이런 막강한 능력을 지닌 대형 유통점들이 가전시장을 주도할 경우 주도권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가전 수익성이 떨어지고 사업 자체가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도 여기에 연유하고 있다.
사실 전속대리점 체제는 현재 세계적으로도 일본만이 전자양판점의 그늘속에서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고 우리나라처럼 가전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가전유통 체제인 전속대리점이 이제는 개방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게 됐다는 얘기다.
전자3사는 이에 대응해 몇해 전부터 리빙프라자(삼성전자), 하이프라자(LG전자)와 같은 초대형점을 잇달아 개설하고 새로운 유통전략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전속대리점을 지키거나 대형 할인점의 확산에 대적할 수 있는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