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서는 내로라하는 컴퓨터업계 회장들이 합동으로 워싱턴 정가를 방문해 「우리 물건을 좀 더 팔 수 있게 도와 달라」는 노골적인 장삿속 로비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이 행사에 참석한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인텔의 앤디 그로브, 로터스의 제프 파포우, 오토데스크의 캐롤 바츠, 노벨의 에릭 슈미트, 사이베이스의 미첼 커츠맨, 어도브의 존 워녹, SCO의 알록 모언, 시맨텍의 고돈 유방크스 2세, 벤틀리시스템의 그레그 벤틀리 회장 등 9명. 현재 미국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경영자들이다.
미국내에서조차 이례적으로 평가받은 이번 「소프트웨어 로비」에서 회장단이 요구한 사항은 크게 3가지. 「암호화 소프트웨어의 수출규제를 완화해달라는 것」과 「불법 소프트웨어 근절에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것」, 그리고 「소득세 공제 등 각종 세제혜택을 연장해 달라는 것」 등이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미국 소프트웨어업계 이익단체인 BSA는 『소프트웨어산업은 미국을 지탱하는 산업이고 이 부문에서의 정부지원은 곧바로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진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은 대형버스를 타고 워싱턴 정가를 돌며 상원 양당 원내총무와 상무장관을 만나고 앨 고어 부통령과도 협의했다.
회장단은 특히 소프트웨어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보고서로 단단히 무장하고 로비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이들에 따르면 미국의 소프트웨어산업은 지난해 1천28억달러 규모로 전체 제조업 중 3위를 차지했으며 61만9천명에게 새로 일자리를 제공했다. 이는 미국 전체의 6분의 1 수준이다. 또 평균임금도 6만달러로 업계 평균인 2만7천9백달러의 두배를 훨씬 넘어 고부가산업으로 정착했다.
이들은 특히 정부의 암호 소프트웨어 수출규제는 소프트웨어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라고 주장하며 이를 즉시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40비트급 이상의 암호 소프트웨어는 수출이 규제되고 있다. 범죄수사를 위한 행정부쪽 요구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술은 10분이면 해킹이 가능해 실효성이 없다. 따라서 업체는 1백28비트급의 암호기술도 수출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이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에 대한 요구도 한층 강도가 높아졌다. 회장단은 인터넷을 통한 불법복제가 위험수준에 도달했다고 밝히고 지난 95년 불법복제로 입은 피해만 29억4천만달러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이대로 가다간 주력 수출산업으로 효자노릇을 한 소프트웨어산업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현재 의회쪽에서는 회장단의 요구를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행정부와 절충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소프트웨어업체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분위기다.
인터넷시대, 정보시대에 국가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하나의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