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응전 그 현장을 가다 (7)
일반적으로 벤처기업하면 젊은 사장이 중심이 돼 최신유행의 SW나 첨단 분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것이 보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젊은 인재들의 좋은 머리가 모여져 만들어진 작품들이 어엿한 상품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성공적인 벤처기업들의 신화가 하나둘씩 만들어져 온 것도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상식이다.
한글과컴퓨터에서 시작된 이같은 창업성공사례는 최근 잇따라 주가를 올리면서 인터넷 및 방화벽 관련 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경우를 8년 전 캐드캠 SW업체로 출발한 한 중소기업 성우시스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성우시스템(대표 이지성)은 지난 91년 美 HP社의 컴퓨터지원설계(CAD) SW인 「PE10」과 「ME10」 프로그램 공급을 시작으로 이의 유지보수 및 관련사업의 발전을 통해 부가성을 확보하면서 성장해온 기업이다.
지난 2~3년 동안에는 사업분야를 캐드SW의 지원기술에서 제품정보시스템(PDMS) 분야로까지 확대 발전시켜 나갔고 점차 고정고객들을 확보해 나가면서 부가가치를 확보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창업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를 중심으로 영업범위가 한정됐던 성우는 이제 건축 자동화, 설비, 금형, 반도체, 자동차, 전자, 기계, 기구, 전기분야 및 대학교 고객에 이르기까지 캐드와 PDMS 분야의 고객만 60여곳을 헤아릴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약 50억원의 매출을 바라보는 이 회사의 영업내용도 이제 더이상 캐드의 설치 및 유지보수에 머무르지 않고 PDMS, 인터넷, 인트라넷 SW 개발 및 엑스트라넷 시스템 구축, 방화벽 및 보안시스템 구축 등으로 발전해 나가면서 제법 기업의 틀을 갖춰나가고 있다. 성우시스템은 최근의 벤처기업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서 특정 아이템을 기반으로 급속히 부상해 「무서운 아이들」로 인정받아가는 경향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고 있는 기업인 셈이다.
이 회사는 HP의 캐드SW를 공급하고 이의 유지보수를 맡아왔다는 점에서 여타 외국 SW를 공급하는 회사와 다를 것이 없다. 성우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스템통합(SI)차원의 사업을 추진해 나가면서 성장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개해왔다는 점이 다른 기업과 다른 점이다.
성우는 91년 상공부의 공업발전기금으로 한국형 엔지니어링 개발프로젝트를 수행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RDB 근간의 텍스트이미지 캐드캠 데이터를 집약 운용할 수 있는 SW를 개발해 내기에 이른다.
또 2년 후인 94년에는 자체개발한 전자문서 검색SW인 「뷰 어드바이저」를 내놓는다.
이어 지난해에는 일본의 유닉社와 뷰어드바이저의 수출계약을 성사시켜 지난 수년간의 노력이 대외적으로도 열매를 맺게 된다.
이같은 결과가 있기까지에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회사의 기풍에 의존한 점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사업환경 변화에의 적응과 인재육성이라는 경영자의 독특한 경영 노하우가 숨어있었음은 물론이다.
사장 자신부터가 항공대 전자공학과 출신의 엔지니어라는 점이 작용했기도 하지만 이 회사는 전반적으로 기술력을 갖지 못한 사원이 발붙이기 힘든 일터다. 사장 자신이 첨단 중소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각오를 갖고 있는 만큼 기술력은 이 회사의 생존과도 직결돼 있다. 특히 최근 SW에서 각광받는 제반기술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만 이 회사의 엔지니어들이 처음부터 전문가로서 입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 타사와 다르다.
최소한의 엔지니어적인 적성만으로 사원을 뽑고 이후의 훈련을 통해 회사가 SW분야의 전문엔지니어를 길러가고 있는 것이다. 성우에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각각 관심있는 분야를 선정해 연구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라 논문을 작성하는 일은 기본이다. 예를 들어 97년에 입사한 사원들은 지금 「멀티미디어 핵심기술 ATM의 이용분야」라든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으로의 진출 전략」 「3D캐드의 특징과 판매전략」 「MS 네트워크의 특징과 활용가능성」 「인터넷에서의 보안전략」 「자바의 무한한 가능성」 「웹과 DB의 연계 사례 구현」 등 내용으로 각자의 계획에 따라 연구보고서를 작성중이다. 기업이 인재를 기르는 산 교육장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인재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를 여실히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에는 실력있는 간부진과 이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선배들이 포진하고 있는 것이 절대적인 힘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교육만으로 기업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느 벤처기업과 마찬가지로 이 회사도 톱경영자가 변화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항상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를 사업에 그대로 적용시켜 나가려 한다는 점에서 항상 긴장감을 가진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이 회사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단순히 제품을 공급하는 대리점 역할에 그친다면 변화를 헤쳐나갈 수 없는 것이 정보통신산업계의 현실이다. 성우시스템은 그 흐름을 잘 읽어 나가면서 기존의 사업을 유지하는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벤처기업으로의 성장을 꿈꾸고 있다.
성우시스템은 지난해말부터 새로운 산업기술 분야에 대한 관심을 더이상 등한히 할 수 없다고 보고 인터넷과 관련된 분야의 연구개발사업에 새로이 참여했다. 프리웨어 개념인 인터넷을 활용하지 못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사용의 물꼬를 터주자는 차원의 새로운 사업에 눈을 돌린 것이다.
물론 기존의 재래식 사업(?)이라 할 수 있는 2D사업도 계속 진행해 나가면서 새로운 분야로의 적응을 점진적으로 진행해 나가자는 것이다.
성우시스템은 이미 새로이 진출한 인터넷 관련 분야의 연구결실을 수확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캐드 및 PDMS구축을 통해 쌓은 그룹웨어 및 인터넷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인트라넷 프로젝트가 이미 완성단계에 있고 이제 본격적인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인트라넷 진출은 때늦은 감이 있다. 작년에 불황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면 이 분야에 좀더 빨리 진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지성 사장의 말에서 40대 중반답지 않게 변화를 맞아 이를 넘어서려는 도전적인 젊은 사고가 엿보인다.
성우시스템의 경우는 비전을 잃지 않으면서 변화에 꾸준히 대응하는 중소기업으로서 어떻게 성장해나가고 어떻게 정보통신분야의 한 기둥을 떠받칠 것인 지를 읽기 어렵지 않게 해준다는 점에서 벤처기업의 모범사례로 기록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관련업계의 평가다.
[인터뷰] 성우시스템 이지성 사장
『기술산업에서 자본은 하나의 수단입니다. 자본 자체가 비즈니스를 지향하니까 마케팅 능력만 있으면 자본조달은 신경쓸 일이 없지요.』
91년 창업이래 돈에 관한 한 별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성우시스템 이지성 사장(44)은 우리 중소기업이 기술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금조달이나 매출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마케팅전략 부재 때문이라고 간단히 지적한다.
『중소기업은 기술력이 있더라도 자신의 제품을 널리 알려 팔릴 수 있도록하는 마케팅능력이 없으면 거기서 끝입니다. 마케팅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자금조달과 영업의 두 부분에 신경을 쓰다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요.』
정부나 언론에서 벤처기업 지원을 얘기하고 있지만 그나마 회사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져야만 자금조달이 용이한 현실이고 보면 이 사장의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까 돈 빌려달라고 사정하면 돈 안빌려줍니다. 「우수한 기술이니까 잘 생각해 보라」고 배짱 부릴만큼 스스로에게도 자신감이 있어야 돈을 빌릴 수 있지요.』
성우시스템은 캐드SW 공급사업자로서 성장해온 배경 때문에 벤처기업으로서 분류하기 다소 어려운 점도 있지만 이 사장은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깔고 새 것을 창조하는 것도 나름대로 좋은 사업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그는 HP社의 캐드벤더로서 각종 캐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인터넷을 통해 이것이 필요한 외국 HP대리점과 연계해 판매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다. 이미 일본지역에 판매공급계약을 맺은 것도 이같은 노력의 결과다.
또 세계각국에 그동안 자신이 개발한 기술력을 시험해 볼 겸 해외진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그에게는 해외진출도 별 것이 아니다. 국내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니까 외국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거기서 승부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삼성전자가 삼성HP로 바뀐 후 독립해 회사를 창업한 그는 중소SW업체의 사장으로서 SW사업에서만큼은 중소기업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중소기업이 순발력이나 개발집중력에서 대기업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만 부족한 것은 자금력인데 이조차 기술력만 인정받으면 투자할 자본가나 돈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는 또 『최근 벤처기업가들이 모험정신을 가지고 사업에 뛰어들지만 목표시장은 갖지 못한 채 뛰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베테랑다운 충고를 잊지 않았다.
또 『어느 기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회사와 직원에게 비전을 갖게 하는 것이 사장의 고충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는 그는 새로운 경영기법을 접하기 위해 자신이 연세대 경영학대학원에 나가고 있다고 밝힌다.
이 사장은 마지막으로 그동안 연구개발한 인터넷, 인트라넷, 방화벽 등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략적 투자대상을 집중공략해 소위 「뜨는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다.
<이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