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통신과 방송의 융합

모든 기술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 최근들어 중요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 것이 정보통신 분야에서의 디지털기술이다. 기존의 아날로그기술에 비해 디지털기술은 다용량 전송을 가능하게 하고 잡음이 적으며 컴퓨터와 정보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기술은 컴퓨터와 통신의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되고 있으며, 미래의 주력산업을 만들어 나갈 핵심인자로 추정되고 있다.

컴퓨터와 통신은 융합돼 기존의 서비스를 고도화시키고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해 내면서 후생의 증대 및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그런데 디지털기술의 공헌은 컴퓨터와 통신의 융합에 한정되지 않는다. 디지털기술은 특히 근년에 들어와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디지털기술을 이용함으로써 다양한 유형의 정보를 다양한 매체의 기기를 통해 전송, 처리할 수 있게 됐으며, 종래 하나의 망에서 한 종류의 정보 서비스만을 제공해 왔던 관행을 넘어서 하나의 망을 가지고 다양한 정보를 전달,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하나의 망 이상에서 이들을 공유함은 물론 정보를 대용량으로 음성, 영상, 데이터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게 됐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통신망을 통해서는 음성만을 전송했을 뿐이었으나 이제는 음성뿐 아니라 영상, 데이터 등을 전송할 수 있게 됐으며, 방송망을 통해서도 방송을 하는 이외에 음성, 문자신호 등을 전송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의 망을 통해 방송프로그램, 주문형 영상, 음성전화, 인터넷 데이터 등이 제공되면서 소비자들은 그들의 선호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이런 때 고화질의 영상, CD수준의 음질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방송 및 통신의 차원에서 다기하고 질좋은 정보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기술에 의해 가능해진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현상을 통해 컴퓨터와 통신의 융합이 가져다 준 것 이상의 영향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세계를 가져오는 디지털환경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힘겨운 선택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의 차세대 텔레비전의 예는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는지를 예시한다. 일본은 차세대 텔레비전을 주도해 보려는 야망하에 정부, 업계가 단합해 15조엔을 들여 하이비전이라는 고화질 텔레비전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러나 이러한 하이비전은 아날로그기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때문에 최근의 디지털 정보환경과 맞지 않는 것이었고 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고심끝에 최근 모든 방송을 디지털화하기로 했고 더구나 그 시기를 2000년으로 앞당기겠다고까지 발표했다.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모든 방송을 디지털화하기로 했고, 넓어진 대역에서 종래의 방송프로그램뿐 아니라 전화, 인터넷 등 통신서비스도 함께 실어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방송방식을 채택하기로 한 것은 미래의 발전추세를 인식한 중요한 방향전환이다. 비단 일본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모두 모든 방송의 디지털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주파수 경매로 얻을 수 있을 7백억 달러를 포기하면서 방송사에 디지털 방송 주파수를 무료로 나누어 주었고 그 대신 30개월 내에 방송을 디지털화하려는 작업을 시작, 내년에는 서비스를 시작할 정도에 이르렀다.

디지털화로 통신과 방송이 융합하게 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방송의 디지털화 및 그로 인한 통신과 방송의 융합은 더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앞에서 본 대로 세계 주요국은 이미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것은 21세기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결정을 미루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 21세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에 정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할 때인 것이다.

<통신개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