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항공산업의 역사적 순간」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필 콘딧 보잉사 회장은 그동안 세계 항공, 방산부문 시장에서 막강한 라이벌로 경쟁을 벌여 온 맥도널 더글러스(MD)사를 1백33억달러에 흡수, 합병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이로써 보잉사는 종업원 20만명, 연간 매출액 4백80억달러(한화 약 4백조원)에 예상수주 총액 1천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공룡으로 거듭 태어났다.
보잉사는 지난 1916년 윌리엄 보잉이 창업,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세계 최대의 항공우주산업체로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 나름대로 새로운 경영기법으로 생존과 경쟁력을 유지해 온 거대기업이다.
보잉사의 경쟁력은 세계 시장수요의 변화 속에서도 한 두수 앞서가는 「정확한 수읽기」를 통해 경영전략을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한 데서 비롯되고 있다.
항공업계의 불황으로 지난 89년 무려 6만여명의 종업원을 해고해야 했었던 보잉은 92년 매출이 3백억달러에 이르는 등 호조를 보였으나 93년 이후 18개월 동안 종업원의 19.5%에 달하는 2만8천여명을 감축,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시애틀을 뒤집어 놨으나 올 들어 1만여명의 신규 종업원을 채용키로 하는 등 공룡기업답지 않는 신속한 변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고 있다.
보잉사의 이같은 경쟁력은 이른바 지속적인 품질개선으로 불리는 「내부 생존전략」에서 나오고 있다.
품질, 원가, 납기, 안전성, 사기 등 5가지 관심분야를 통해 제품의 품질을 보증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완전한 고객만족을 이룬다는 것으로 생산성 중심의 경영전략에서 고객만족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총체적 경영으로 전환한 86년부터 시작된 이 전략은 팀, 조직으로 업무수행, 책임의 다양화, 전 조직의 목표부과 및 매트릭스 업무추진, 다양한 정보에 의한 의사결정, 고객지향적 사업추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강인하고 억세며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며 △회사의 운명을 걸고 △과정을 중시하는 보잉만의 독특한 기업문화가 결합해 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고 있다.
그러나 보잉이 결정적으로 탈바꿈한 것은 올 초 회장으로 취임한 필 콘딧 회장의 등장이다.
80년 보잉 역사상 7번재로 최고경영자(CEO)자리에 오른 콘딧은 CEO에 오르자마자 록웰인터내셔널의 방산 및 우주사업부문을 32억달러에 인수, 보잉이 야심적으로 추진해 온 우주산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으며 지난해 11월 미국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차세대 전투기(JSF)사업에 록히드마틴사와 함께 사업 최종주자로 선정되는 실적을 이뤄냈다. 지난해 12월에는 신형 중거리 항공기인 B737‘700기를 출하한 데 이어 MD와의 합병을 일궈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보잉사는 컴퓨터 베테랑인 콘딧 회장이 CEO취임이후 제품생산에 컴퓨터디자인시스템(CATIA) 등과 같은 컴퓨터설계시스템을 도입해 최대 라이벌인 에어버스와의 차별화는 물론 원가절감과 항공기 제작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등 경영변신을 시도하는 데 성공했다. 항공기처럼 거대한 상품을 디자인하려면 일반적인 컴퓨터 설계와는 달리 엄청난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한 탓에 모든 상용항공기의 경우 목업이란 모형제작방식으로 제작됐으나 목업방식은 서로 치수가 맞지 않아 손실이 많은 데다 제작기간도 지연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보잉은 B777기종을 개발하면서 슈퍼컴퓨터 8대를 동원, 「CATIA」라는 설계시스템을 도입해 3백만개에 달하는 부품을 3차원 영상으로 미리 조립, 목업방식으로 인한 제작기간 지연이나 낭비요인을 극복하고 생산성을 대거 높일 수 있었다.
보잉사는 창립 1백주년이 되는 2016년을 대비한 중기경영전략으로 최근 「비전 2016」 프로그램을 마련, 새로운 도약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크게 △성실(Integrity) △고객만족(Cumtomer Satisfaction) △주주에 대한 존중(Shareholder Value) △다함께 일하는 것(People Working Together)등 4가지로 요약된다.
보잉사가 과거 3차례의 대위기를 극복하면서 추락할 듯 하면서도 재선회하는 저력을 보인 것은 세계 항공업계의 초인, 시애틀의 대부라는 화려한 단어에 걸맞게 인력감축 및 리스처럭처링을 성공적으로 추진했기 때문이다.
<정창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