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자3사의 해외투자 전략은 「현지에서 제품을 생산해 현지시장을 공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나아가 연구개발, 마케팅, 서비스 등 경영 전반을 해외현지에서 모두 수행하는 현지완결형 경영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현지 밀착경영으로 「현지화」를 확실히 다지고, 또 「세계화」를 실현하는 이른바 「글로컬라이제이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된 추진대상은 물론 가전제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아직은 미숙한 면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지역과 국가에 따라 문화와 관습이 우리나라와 다른 것은 물론 전반적인 경영환경이 각양각색이어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특히 선진 다국적 기업을 비롯한 일본 전자업체들처럼 오랜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노하우를 축적한 것도 없어 여기저기서 비싼 수업료를 물고 있는 실정이다.
대우전자가 리딩3사 중 가장 먼저 냉장고로 중국에 발담았다가 철수한 것에서 부터 삼성전자 포르투갈 컬러TV공장 영국 이전, LG전자 이탈리아 냉장고공장 철수, 삼성전자 슬로바키아 냉장고공장과 LG전자 독일 VCR공장 철수결정 등은 90년대들어 본격화된 해외투자 진출과정에서 튀어나온 부산물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투자지역마다 아직도 해소하지 못해 씨름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으며 어떤 곳에선 시장이나 경영환경이 돌변해 혼선을 빚고 있다.
일례로 LG전자가 영상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멕시코 멕시칼리 지역에선 요즘 때아닌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일본과 대만의 전자업체들이 잇따라 진출하면서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인력 스카우트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일부 지역에선 근로자들이 오랫동안 눌러있지 않아 1년 정도 지나면 거의 다른 사람들로 교체되는 경우도 있다. 근면치 못한 국민성에다 종교까지 다양해 생산성을 끌어올리기는커녕 정상적인 공장가동에 차질을 빚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투자진출 당시의 조건이 변색되거나 명령이 이행되지 않아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특히 베트남과 같은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선 근로자들이 시간 채우기에 급급하거나 예상치 않았던 정부의 간섭 등으로 애를 먹기도 한다. 동구권내 한 가전공장에선 법인장이 조경을 위해 나무를 심으라고 한 사소한 지시조차 반년이 지나서야 이행되는 사례도 있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리딩 3사의 현지완결형 경영추진이 실제로는 현실과 적지 않은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리딩3사가 한결같이 현지법인장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 해외경영 체제의 현지완결형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자금조달에서부터 생산라인의 부품소싱에 이르기까지 구조적으로 본사에 의존하고 있는 부분이 많아 현지완결형 경영을 원만하게 끌어내기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또 해외법인장들이 현지에서 시장환경을 분석하는 시각과 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서로 달라 엉거주춤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에 대해 LG전자 권영제 이사는 『현재와 같은 인프라로는 해외현지의 완결경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해외현지화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한 본사내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각 지역별로 인프라를 조성하는 게 선행돼야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중국, 브라질, 인도, 독립국가연합(CIS)처럼 앞으로 현지화를 추진하는 데 상당한 위험요소와 변수를 안고 있는 투자진출 초기단계 또는 진출예정 지역에 대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종합적인 위기극복 전략을 확실히 마련하지 못할 경우 리딩3사는 현지화 달성은커녕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윤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