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熙烈 국립중앙과학관장
『이제 가격으로 경쟁하던 시대는 끝났다.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밖에 없다.』
최근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경제불황이 심해질수록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개발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고 또 그 속성상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최고 경영자들의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최근 국내에서 유망한 벤처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카스전자도 90년을 전후해 연구개발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은 로드셀을 이용한 전자저울을 시장에 내놓을 때까지 무명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또 이탈리아인 마르코니가 무선전신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공로로 1909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할 때까지만 해도 그의 연구결과가 훗날 컬러 텔레비전의 영상을 송출하는 데 이용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과학기술은 또 오랫동안 연구가 축적된 끝에야 비로소 새로운 이론 및 기술이 탄생된다는 점에서 단시간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당시 미국보다 훨씬 앞서있던 일본의 항공산업과 독일의 전자통신 산업을 통제한 결과 오늘날 이 두 나라는 이 두 분야에서만큼은 여전히 미국을 따라잡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개발은 이처럼 불확실성, 장기성, 축적성 등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수립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마치 마라톤 경주에 나서는 사람처럼 장기적인 전략과 끈기로 정책개발에 임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어린이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과학기술 교육을 통한 과학 마인드의 확산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과거에는 과학기술 교육이 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최근에는 학생들이 직접 체험해보도록 하는 학교밖 교육이 학교교육 못지않게 강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특히 학교 밖 교육에 있어서 청소년들로 하여금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장래에 과학자가 되려는 꿈을 갖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과학관이다.
현재 우리나라 과학관의 숫자는 총 44개로 인구 1백만명에 약 1개의 과학관이 있는 셈이다. 일본의 32만4천여명, 미국의 12만6천명, 프랑스의 11만명, 독일의 6만7천명 등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과학관 투자는 매우 빈약한 형편이다.
흔히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박물관의 수와 질을 가지고 평가하듯이 과학기술의 수준도 과학관의 수와 질에 의해 평가되기 때문에 우리도 21세기 선진국 도약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과학관의 수와 질을 높이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 과학기술처는 지난해 11월 과학관 육성법을 전면 개정, 누구나 자유롭게 과학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과학관의 설립요건을 대폭 완화했고 또 과학관으로 등록하면 세금을 면제해주는 등 획기적인 과학관 육성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오고 있다.
이에 힘입어 현재 44개에 불과한 과학관의 숫자가 2005년에는 1백50여 개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곧 있을 올해 여름휴가와 방학기간 동안에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과학관을 한번쯤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