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7대 강호가 나름대로 안정적인 영토를 확보하고 세력균형을 유지해온 세계 유리벌브시장이 최근 신흥강호의 잇따른 등장과 이들간 영토확장을 위한 활발한 합종연횡으로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브라운관용 유리벌브시장은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원조격인 미국의 코닝과 일본의 아사히,NEG 그리고 한국의 삼성코닝,한국전기초자 등 5개사가 영토확장을 추구하면서도 상호 견제와 조화를 이루어왔다. 또한 이들 5사에 못지않은 세력가인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프랑스의 톰슨은 영토수호에 치중, 5강의 각축전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최근 잠재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대우전자와 LG전자가 이 시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있다.
대우전자는 최근 프랑스에 유리벌브사업을 전담할 현지법인을 세운데다 프랑스 국민의 강한 반발로 일차 무산되기는 했지만 톰슨멀티미디어의 인수를 계속 추진하고 있어 기존 업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대우전자가 톰슨멀티미디어를 인수하게 된다면 단번에 7대 강자중의 하나로 급부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도 지난해 일본의 아사히글라스,인도네시아의 로다마스,수벤트라사 등 3개사와 합작으로 「P.T.비디오 디스플레이 글라스 인도네시아(주)」를 설립, 유리벌브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합작공장은 생산규모가 그리 큰편이 아니고 LG전자의 지분도 많지 않지만 유리벌브업계는 또 하나의 태풍의 눈으로 경계하고 있다. LG전자는 유리벌브를 소화할 수 있는 브라운관과 컬러TV,모니터분야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향후 행보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강자로 부상할 여지가 있는데다 아사히와 합작을 했다는 점 때문이다. 신흥세력인 LG전자와 기존 세력중에서도 2대 강자로 불리우는 아사히가 손을 잡은 것은 앞으로 불어닥칠 합종연횡의 서곡으로 비치고 있다.
이같은 벌브업계의 우려를 반영이라도 하듯 지난달에는 미국 코닝,삼성코닝,아사히글라스가 합작해 멕시코에 유리벌브 공장을 짓기로 했으며 대우전자도 조만간 기존업체들중에서 기술제휴선을 물색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는 세계 유리벌브시장은 이제 세력균형의 시대가 가고 천하통일을 꿈꾸는 제후들간의 합종연횡이 횡횡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컬러TV와 모니터시장 경쟁이 유혈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은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한다.
일본과 한국의 거대기업들과 네덜란드 필립스 등은 WTO체제와 EU통합, 그리고 컬러TV와 모니터의 저부가화 시대를 맞아 세계 곳곳에 현지공장을 설립,규모의 경제를 통한 우위선점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우위선점 전략의 일환으로 하나같이 전세계를 지역별로 분할,유리벌브-브라운관-컬러TV 및 모니터의 수직계열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기존 7강중에서 코닝,아사히,한국전기초자 등 3사와 다른 업체들간의 이해관계가 틀어져 이들 사이에 존재해왔던 「보이지 않는 룰」이 깨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3사는 브라운관이나 컬러TV,모니터 사업체들과 직접적인 연계성이 없는 반면 NEG,삼성코닝,필립스,톰슨,대우전자,LG전자 등 다른 업체들은 모두 직접 세트사업을 하고 있거나 세트업체들의 계열사들이기 때문이다.
아사히와 LG전자,아시히와 코닝 및 삼성코닝의 합작에서 보듯 유리벌브업계는 외부침입세력이나 동종업체들간의 제휴를 철저히 거부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생존이나 세력확장을 위해서는 누구와도 과감히 손을 잡는 격변의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유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