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한.러 경제공동위원회

러시아만큼 뒷마무리가 안되는 나라도 드물다.

미국의 패스파인더호에 앞서 88년7월 화성탐색기 포보스가 발진했고, 61년4월 세계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진출한 나라는 러시아다. 63년 보스토크 6호의 발렌티나 블라디로브나 테레슈코바는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됐고, 67년 6월 금성 4호가 금성에 최초로 연착륙했으며, 86년2월 세계 최초의 우주정거장 미르가 성공적으로 발사된 나라 역시 러시아다. 미국의 첨단기술을 무색케 한 「시베리아 곰」의 민첩성의 발로다.

그러나 이같은 우주탐사의 결실은 모두 미국으로 돌아갔다. 최초의 달 착륙, 화성탐사 성공, 우주왕복선의 성공이라는 영예는 미국의 몫이 됐다. 모스크바의 「골득점력 부족」 때문이다.

80년 전 1917년 러시아제국은 혁명으로 무너지고 소비에트 연방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했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무릎을 꿇고 결실을 보지 못했다. 85년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신베오그라드선언,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로 이어지는 일련의 재건정책 역시 아직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다.

올레그 시수예프 러시아 부총리 일행이 8일 한국을 방문했다. 양국은 제1차 한, 러 경제공동위원회를 열고 연해주 나홋카 자유경제지역내 한국공단 입주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또 한, 러 민간경제협력위원회와 한, 러 과학기술정보교류센터, 광학공동연구개발센터도 잇달아 설립키로 했다. 그동안 양국간 경협의 걸림돌이던 차관상환도 물자와 부지로 상계하기로 하는 등 많은 진전을 보았다. 지난 92년의 경제공동위원회 설치 이후 5년 만의 결실이자 러시아의 뒷심 부족 악습이 개선된 최초의 징표였다.

우리도 문제는 있었다. 형제애를 보이기는커녕 눈 앞의 돈벌이에만 급급했던 면이 있었다. 韓非子 說林편에 「將欲取之 必先與之(상대에게서 얻고자 한다면 먼저 그에게 주어라)」는 얘기가 있다. 눈 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큰일을 도모하는 슬기와 여유를 가져야 할 때다.

이번 러시아 부총리의 방한으로 양국간 우의가 돈독해지길 기원한다. 그들은 원천기술을 제공하고 우리는 마무리 기술을 보여준다면 두나라의 우애가 깊어지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