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벤처기업이 뛰고 있다 (13);테크누리

(주)테크누리(대표 황성규)는 지금 그리 잘 나가는 기업이 아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졸업한 젊은 두뇌 9명이 주축이 돼 「첨단제품 개발을 통한 우리기술의 발전적 미래상 제시」를 목표로 96년 1월 창업한 하이테크 벤처기업 테크누리.

「우리별 1호」를 만들던 과기원 인공위성센터 출신 9명이 벤처기업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출발부터 화제를 모았으나 이제 그때의 화려함을 찾을 수 없다. 이들은 지난해와 올초 참담할 정도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난 90년 당시 20대 초반의 황성규 사장은 국내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제작을 담당했던 한국과학기술원 인공위성연구센터 연구원 출신 룸메이트들과 함께 세계적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자며 IBC(Idea Bank Center)라는 이름으로 창업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90년 학교, 학원 수업시간 배정프로그램 개발, 91년 교육용 피드백 시스템 개발, 92년 비디오, 가요반주기 개발, 93년 전화컨트롤러 및 국토관리청 컴퓨터시스템 개발, 94년 미디시스템 개발과 원격제어기 특허출원 등에도 불구하고 좌절을 겪어야 했다.

이들은 96년 1월 다시 모여 「세상물정을 너무 몰랐다」며 첫번째 창업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가상현실, PC통신, 웹브라우저, 인트라넷 분야의 벤처기업으로 창업했다.

이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전체 직원 평균연령이 20대 중반이라는 점과 과기원 인공위성센터 교수진들이 회사고문으로 나섰다는 점, 그리고 연구개발 능력면에서는 웬만한 중견그룹 연구소보다 뛰어나다는 점이 전부였다.

이들은 말 그대로 기술과 젊음을 자산으로 믿고 무작정 창업을 한 경우였다.

테크누리는 96년 7월 정보통신부 유망 중소 정보통신기업 선정, 병역특례업체 지정, 기술집약형 벤처기업 선정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며 재기를 다진다.

그러나 지난해 뚜렷한 판매제품 부재, 마케팅능력 부족, 자금압박 등으로 또다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린이를 비롯한 넷맹들이 마우스로 쉽게 인터넷에 접속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웹브라우저 「오딧세이」를 개발하고도 매출액이 10억원에 그치는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결국 그동안 해오던 각종 기술용역을 그만두고 「오딧세이」 「Q-인트라넷」 개발에만 전념,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으나 제품개발상의 인건비, 운영비 지급 등에 따른 경영악화와 마케팅을 수행할 인재부족 등으로 두번째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특히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엔지니어들이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면 저절로 팔리는 줄 알고 있었던 엔지니어들은 「오딧세이」가 팔리지 않자 크게 당혹했다. 타사의 동일제품에 비해 성능면에서 오히려 앞서는 제품을 만들어 놓고서도 실패한 것은 마케팅력 부족 때문이었다.

순수한 의미의 연구개발, 자신들이 직접 소비자를 상대로 마케팅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대기업에서 주문한 각종 기술용역 업무마저 취소한 이들은 처음의 실패보다 더 큰 좌절을 맛보았다. 좌절의 결과는 곧 벤처기업의 가장 취약고리인 자금력으로 다가왔고 화려했던 과기원 출신 창업기업 테크누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올초 이들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자기반성을 시작했다.

불필요한 인력 감축, 철저한 수입 및 지출관리, 사무실 관리비 등 운영비 줄이기, 적극적인 외부용역 수주 등이 이들이 내린 해법이었다. 특히 엔지니어들은 제품개발 초기부터 소비자와 시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개발중인 제품에 이러한 의지를 적극 반영했다. 연구개발 기획단계부터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고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품이 나와야 하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인트라넷을 사용, 저렴한 가격으로 사내정보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Q-인트라」 범용 패키지였다. 「Q-인트라」는 인트라넷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웹기술, HTTP, JAVA, 스크립트 등을 이용한 사내정보시스템으로 정보공유, 문서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특히 게시판, 편지보내기 등 BBS기능, 도서관리기능, 근태관리기능, 일정관리기능, 명함 및 주소록 관리기능, 사용자인증을 통한 보안기능 등이 갖춰진 그야말로 가상 사무환경 구축에 탁월한 조건을 갖춘 패키지였다.

제품개발이 끝나자 엔지니어들이 적극적으로 영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종전에는 제품개발만 끝내면 모든 판매를 영업에서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엔지니어들의 움직임은 회사에 큰 힘이 됐다. 엔지니어들의 영업참여는 전문기술영업이 필요한 인트라넷 그룹웨어 구축에서 필수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마케팅면에서도 이들은 기존의 소비자와 일대일 접촉방식이 벤처기업의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 대규모 전시회 참가와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뒤 찾아오는 고객을 만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제품구매 의사가 없는 무차별적인 고객을 만나기보다는 관련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고객 명단을 확보하고 이들에게 접근하는 새로운 마케팅전략이었다. 이는 단기적인 마케팅전략으로 승부해야 하는 벤처기업으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테크누리는 최근 서울 KOEX에서 열린 SEK97에 참가,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 시기에 제품에 대한 제안서를 요청한 기업만도 무려 1백여개. 이들 기업을 상대로 테크누리는 최근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덕분에 테크누리 35명의 젊은 직원들은 이제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고 있다.

직원들 스스로 「두번의 실패」가 젊기 때문에 가능했고 「실패와 성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한 결과였다.

올 10월, 이들은 대전 둔산동 정부종합청사가 내려다 보이는 현재의 사무실을 절반정도 줄인 조촐한 사무실로 이사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좌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한다. 과기원 출신 최초의 창업기업 테크누리에서 이제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주)테크누리가 걸어온길

△91.1 IBC(Idea Bank Center)창업 △94.4 과기원내 개발실 설치 △94.6 IBC 폐업 △96.1 테크누리 법인설립 △96.2 부설연구소 설립 △96.7 정보통신부 유망중소 정보통신기업 선정 △96.11 병역특례업체 지정 △97.5 대전광역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승인 △97.6 중소기업진흥공단 유망중소기업 선정, SEK97 참가.

[인터뷰] 테크누리 황성규 사장

『서른두살의 나이에 이미 두번의 좌절을 경험했읍니다. 그 속에서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두번의 실패면 이제 저도 성공할 자격이 있는 것 아닌가요?』

한국과학기술원 출신 최초의 창업기업, 그리고 실패, 재창업. (주)테크누리 황성규 사장은 나이에 비해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표정을 짓는다. 외형상으로 보면 35명의 직원, 그중 20여명이 엔지니어, 더구나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과기원의 과학영재 9명이 모여 만든 인트라넷 그룹웨어 개발 전문벤처기업의 대표라는 직함이 어울리지 않는 앳된 얼굴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35명의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벤처기업 특유의 오기와 생존에 대한 비장함 같은 것이 엿보인다.

『다른 기업들에 비하면 아직도 부족하겠지만 젊은 나이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특히 제품개발 후 시장에 대한 눈이 트이지 않아 마케팅에서 많은 애로를 겪었습니다. 재창업 이후 지난 1년반은 마케팅이 힘들다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테크누리는 정통부,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유망 중소기업으로 선정됐고 병역특례 혜택 등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런 열매를 맺기까지 벤처기업의 자금줄인 기술용역을 배제하고 연구개발에 치중하다보니 경영난을 겪었고 일각에서 합병설, 폐업설 등이 나돌아 고전하기도 했다.

고전의 원인은 바로 용역이 아니라 회사 고유의 캐릭터를 살릴 수 있는 인트라넷 제품개발에 치중하자는 회사의 전략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 전략은 「참된 벤처기업은 독자적인 제품개발 영역을 갖춰야 한다」는 그의 오기에서 비롯됐다.

『마케팅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연구개발자의 생각을 제품구매를 총괄하고 있는 각 업체의 책임자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매를 하려는 대상의 실무담당자가 제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갖고 구매의사를 밝혔는데도 결정적인 순간에 최종 책임자가 바꿔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황 사장은 젊은 사람이 벤처기업 대표로 있는 경우에 이러한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젊다는 이유로 제품에 대한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나이 지긋한 구매처 관계자는 아예 만나주지 않는가 하면 배타적인 시선으로 경계하는 경우가 허다해 젊은 벤처기업의 성장을 막는다고 꼬집는다.

스무살 중반부터 창업을 주도한 젊은 벤처기업가 황 사장은 나이차이를 극복하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특히 영재교육을 받은 젊은 과기원 출신 기업가를 기성사회는 일그러진 시선으로 보았을 것이고 이것이 늘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기업경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인력정예화, 마케팅 강화, 불필요한 운영비 절감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달 안으로 현재의 인력을 과감하게 축소할 것이며 10월중으로 「Q-인트라넷 2.0」을 출시해 인트라넷 구축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황 사장은 올봄이 테크누리의 가장 큰 고비였으며 이제 새로운 방향점을 찾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돼 올해 목표한 매출액 27억원은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올해 회사운영에 대한 기본 골격이 갖춰지면 탁월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국내 그룹인트라넷 구축의 선두주자로 부상할 것이라며 자신하고 있다.

<대전=김상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