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3사를 비롯한 가전업계가 현재 고민하는 난제중의 하나가 21세기 경영환경에 어떻게 적응해야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제조와 기술이 중시된 20세기 산업사회가 정보와 기초과학을 중심으로한 지식사회로 옮아가기 때문이다. 즉 이제까지와 같은 소품종 대량생산 사업구조로는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21세기 무한경쟁에서 견뎌낼 수 없다는데 궁극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제조에서 손뗄 경우 가전산업은 그 자체가 존재의 의미를 잃게된다. 제조업을 계속하면서 여기에 소프트 개념을 적극 도입해야 하는, 이제까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변신을 가전업계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VCR를 대체할 새로운 정보가전 상품으로 부각되고 있는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의 경우 플레이어없이 타이틀로만은 전혀 상품성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나 DVD플레이어를 만들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구조가 아니다. 어느 기업이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DVD의 등장으로 정작 돈벌이할 수 있는 곳은 DVD 타이틀에 갖가지 「정보」, 그중에서도 창조적 지식을 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영화산업의 본거지인 미국 할리우드가 DVD 출현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기도 한다.
세계적인 전자업체들이 영화산업에 뛰어들거나 영화 또는 정보통신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같은 사회와 산업구조의 변화에 연유하고 있다.
21세기 지식사회의 또 다른 특징으로 2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로 바뀌는 가운데 각각의 분야에서 일등상품만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처럼 무엇무엇에 대한 일등을 할 수 있어야 우리나라 가전업체들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을 주시시키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선 전자업계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시각을 같이하고 있다.
명지대 송자 총장은 『21세기 지식사회의 특징으로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시대, 기술보다는 기초과학이 훨씬 더 중시되는 사회, 그리고 다양한 욕구속에서 일등상품만이 존재하는 사회』로 규정하고 『기업내 최고경영자의 의사결정도 4I(Investment-투자, Industry-업종, Information-정보, Individual Customer-고객)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즘 리딩3사내에서 현재와 같은 제조업 중심의 조직체계를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은 전자업계가 이러한 환경변화를 느끼는 좋은 예다. 아직은 구호성이 강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가장 큰 사업단위로 멀티미디어 사업군을 내세우기 시작했으며 전략적 제휴와 기술소싱의 초점을 하드웨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쪽에 두는 등 21세기 경쟁환경에 대응해 변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영방식도 최고경영자의 독주(?)형태에서 임직원들의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LG전자 기술총괄(CTO)인 서평원 부사장은 『21세기에는 제조업체라하더라도 기업내 전반적인 주류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에 의해 형성되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의 승자가 곧 하드웨어도 장악하게 될 것』이라면서 『가전산업도 생산제품을 사용자(유저)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제품에 내재된 소프트웨어를 먼저 개발하고 상품화할 수 있어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리딩3사를 비롯한 가전업계가 국경없는 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脫제조, 소프트화」라는 거대한 기류를 직시하고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해야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윤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