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定德 STEPI 자문위원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은 그동안 경이적으로 발전해왔다. 불과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생산량과 기술 등 모든 측면에서 초고속 성장을 거듭, 주력제품인 메모리분야에서는 세계 최강국으로 도약했고 반도체산업 전체적으로도 미국과 일본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게 늘어났다. 최근 국제시장에서 반도체 가격이 폭락, 한때 효자산업으로 불렸던 반도체가 작년부터 「미운 오리새끼」라도 되는 것처럼 비쳐지는 세태도 따지고 보면 반도체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의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은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안고 있는 큰 문제점이다. 세계 반도체시장에서의 메모리 비중은 불과 30% 내외이고 프로세서를 포함한 주문형 반도체(ASIC)가 40% 정도, 아날로그 및 개별 소자가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와 반대로 메모리 85%, ASIC 5%, 기타 10%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반도체업계의 호, 불황은 메모리 반도체의 주 소비계층인 컴퓨터산업의 경기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그동안 관련기술을 대부분 선국에서 도입했고 역설계(Reverse Engineering) 등을 통한 부품의 국산화 등에 주력해왔기 때문에 ASIC 등 창의적 개발활동은 극히 최근까지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국내 ASIC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컴퓨터, 가전기기 등 시스템업체에 종사하는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시스템의 개발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스템 제조에 필수적인 ASIC의 스펙도 함께 고려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시스템 엔지니어에게 소정의 반도체 설계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반도체 설계회사는 고도의 설계환경을 갖추는 동시에 설계 엔지니어들로 하여금 고도의 융통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 따라서 반도체 설계회사는 전문화하여야 하며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형태가 바람직하다. 앞으로 이러한 분야에서 벤처기업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국내에는 반도체설계 전문인력 역시 매우 부족한 형편이기 때문에 KAIST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반도체설계센터(IDC) 등과 같은 설계 전문인력 양성기관을 더욱 확대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ASIC 제조를 위한 공동시설의 확보가 시급하다. 현재 국내에서 반도체의 일관생산체제를 갖추고 있는 곳은 삼성, LG, 현대 3사뿐이다. 그것도 이들 3사의 제조시설은 메모리 제조시설이 주이며 ASIC 제조시설은 다른 설계회사에 개방하지 않고 있거나 개방한다고 해도 많은 물량을 주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내 중소 반도체설계 전문회사는 현재 설계도면을 들고 미국, 대만, 유럽 등으로 ASIC 제조회사를 찾아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반도체 시제품 제작을 위한 시설을 설립, 하루빨리 이들 중소기업들에 개방해야 하지만 이러한 시설은 설립초기에는 채산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지원이 필수적이다.
결론적으로 시스템 반도체산업은 하루 아침에 갖추어지지 않는다. 시스템 설계-반도체 설계-반도체 제조-시스템 제작 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튼튼하게 해야만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반도체 산업대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