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정보시스템 전무 金鍾鉉
도시는 삭막하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과 만나곤 하지만 막상 되짚어 보면 터놓고 얘기를 나눌 만한 사람 하나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도시인의 삶은 그래서 고독하다.
때로는 개나 고양이처럼 말 못하고 충직한 애완동물에 마음을 주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주거형태가 아파트인 도시생활은 그조차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다.
사실 살아있는 동물을 기르기란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때맞춰 먹이를 주고 배설물을 처리하고 그나마 정이 깊어진 다음에 필연적으로 찾아올 헤어짐의 아픔까지 고려하면 「강아지라도 한마리쯤」 하던 마음은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지난해 11월 일본의 반다이사는 다마고치라는 조그만 게임기를 출시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납작한 자갈 모양에 조그만 액정화면을 갖춘 조작단추라고 해봐야 3개에 불과한 휴대용 게임기가 삽시간에 일본 전역을 「다마고치 열풍」속으로 몰아넣었다.
매월 1백만개씩 생산하는데도 공급이 달려서 2천엔짜리 중고품이 그 열다섯 배인 3만엔에 거래되기도 하고 새벽부터 장사진을 친 끝에 겨우 제품을 샀다는 소비자의 기쁨에 찬 인터뷰도 외신을 타고 전해졌을 정도다.
게임은 달걀이 부화하여 병아리가 나타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3개의 단추를 조작해 병아리들을 훌률한 닭으로 키워야 한다. 병아리는 배가 고프면 삐삐 하는 전자음으로 먹이를 보채고 사용자는 틈나는 대로 나이와 체중을 재보고 컨디션을 살펴야 한다.
병아리가 닭이 되기까지는 대략 열흘에서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리지만 주인이 제대로 보살피지 않을 경우엔 도중에 죽어버리기도 한다.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성장모습과 수명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른바 사이버 페트(Cyber pet), 곧 전자 애완동물의 등장이다.
실상 다마고치가 사이버 페트의 원조는 아니다. 후지쯔는 이미 지난해 6월에 테오라는 전자 애완동물을 CD롬 형태로 선보인 바 있다. 테오라는 가상의 행성에 사는 돌고래 모양의 새 「핀핀」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미국의 PF매직사 역시 「Dogs」와 「Cats」라는 이름의 전자 강아지와 고양이를 판매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사이버 페트들이 경쟁하듯이 등장하고 있다.
실제 동물을 기르는 데 따른 모든 번거로움을 완전히 제거한 채 장점만을 모아 디지털로 재조립한 사이버 페트는 즉흥적이고 간편함을 신앙처럼 추종하는 현대인들의 기호에 정확하게 영합하고 있는 것이다. 조만간 멀티미디어와 인공지능까지 더하게 될 때 사이버 페트는 진짜보다 훨씬 「동물적」이 될 것이다. 상상의 나래를 좀더 펴보면 이미 키우고 있는 전자강아지의 털모양과 색깔을 바꿔주는 프로그램, 곧 「전자미장원」도 머지않아 문전성시를 이룰지도 모르겠다. 몇몇 사람들은 사이버 페트가 아파트 숲속에서 고립되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제 아무리 정교하게 고안된 사이버 페트라 하더라도 정신적인 교감이 존재할 리 없다. 아울러 손끝 하나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사이버 페트가 가뜩이나 옥상에서 친구들과 함께 병아리를 던지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인명경시 풍조를 더욱 조장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같은 염려를 접어두더라도 컴퓨터라는 존재가 갈수록 두려워지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어두워진다. 실제로 두려운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