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 "美 반덤핑규제" WTO 제소

우리 정부가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반덤핑조치를 철회하지 않는 미국을 상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공식 제소한 것은 우리 정부로서는 큰 결단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을 상대로「불공정 규제」를 이유로 세계 자유무역의 경찰격인 WTO에 시비를 가려줄 것을 요구한 첫 조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제소로 지난 84년 한국산 컬러TV에 대해 미국이 고율의 덤핑판정을 내린 이후 13년 동안 계속된 한국산 컬러TV에 대한 반덤핑규제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은 물론 한, 미 양국의 통상관행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여 비상한 관심거리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과의 통상관계에서 항상 피해를 보아온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미국은 오래 전부터 한국에게 곡물을 비롯한 육류, 유통, 통신, 서비스 등 주요 시장의 개방을 요구했으며 그때마다 우리는 협상을 했다고는 하나 크게 보아 미국이 원하는 대로 따라갔었다.

그 정도가 이제 미국의 對韓 통상압력을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와버렸다는 느낌이다. 한국산 반도체 덤핑관세부과 철회요청건만 해도 그렇다. 미국은 자국시장에서 다시 덤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로 덤핑관세가 계속 부과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 조만간 관세부과 여부를 최종 판정하겠고 밝히고 있다.

반덤핑문제는 따지고 보면 우리의 약한 제품경쟁력의 부산물이다. 제품을 수출하면서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미국과 같은 선진시장에서 제값을 받을 수 없었고 그것이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 가격과 차이가 벌어져 주로 발생한 것이었다.

정부가 이번에 WTO제소라는 강경한 수단을 택한 것은 우리의 산업 경쟁력이 약하고 또 우리는 덤핑에 대한 고의성이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수세적인 대미 통상 관계를 공세적인 입장으로 단번에 바꾸고자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 또한 아니다. 단지 우리는 진정 반덤핑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그런데도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WTO에 제소한 것이 결코 지나친 처사라고 보지는 않는다. 우리는 충분히 미국 정부와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런데도 미국은 반덤핑협정의 기본 취지를 무시하면서 한국산 컬러TV에 대해 지속적인 덤핑규제를 해 왔다. 미국은 3년간 극소마진판정을 받은 후 6년 동안 직수출을 중단한 삼성전자에 대해 덤핑관세를 철회하지 않고 있으며 상황변화에 따른 재심 요청도 규정된 기간을 넘기면서까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점은 분명 정당한 조처라고 볼 수 없다. 또 미국은 지난해 1월부터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한국산 컬러TV까지 우회 덤핑혐의를 걸어 조사를 진행중이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앞으로 위성방송수신기나 디지털TV 등 정보가전제품에도 반덤핑규제를 전가의 보도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간의 정황을 미루어 보면 정부가 이번에 WTO에 제소하기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난 90년대 초부터 전자업체들은 정부에 수시로 미국의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아 줄 것을 호소해 왔다. 산업 외적인 측면도 계산에 넣어두어야 했던 정부의 입장도 이해가 되나 이제 거의 모든 산업이 반덤핑이라는 규제를 받아 피해를 볼대로 본 다음에야 비로소 미국을 상대로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무기력하다.

WTO규정에 따라 미국은 우리의 시정조치 서한접수 이후 10일 이내에 협의에 응해야 하며 60일 이내에 합의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미국에 대한 저자세를 버리고 당당하고 떳떳하게 우리의 주장을 펼 때다. 컬러TV에 대한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고 앞으로 다른 제품에 대해서도 더 이상 반덤핑 규제라는 칼을 함부로 휘두를 수 없도록 확실한 약속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