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복합상영관」 건설 붐

최근 제일제당, 현대, 삼성, 대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 사이에 복합상영관의 건설붐이 일고 있다. 이들 대기업이 건설중이거나 계획중인 영화관들은 관객에게 좋은 시설과 양질의 화면, 음향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기존의 영화관람문화를 크게 바꾸어 놓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일제당은 서울시 광장구 구의동 테크노마트내에 스크린 12개 규모, 경기 일산시에 스크린 9개 규모의 「멀티플렉스」극장을 오는 12월 개관한다. 이어 제일제당은 2단계로 2000년까지 전국 대도시와 경기 분당 등에도 「멀티플렉스」극장을 건설해 10여개의 이상의 체인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그룹도 연말에 완공되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씨네플러스」빌딩에 3개의 스크린을 설치하는 것을 비롯, 서울 양천구 목동에 스크린 수 10개를 갖춘 「현대시티월드」를 내년 9월 완공할 예정이다.

삼성그룹의 경우에도 올해 「삼성플라자」내에 4백석 규모의 극장을 설치하는 한편 내년 6월 분당 서현역사 부근에 5개 스크린 규모의 복합상영관을 연다. 삼성은 그룹 계열사가 건설할 주요 유통센터에 복합상영관을 모두 설치, 오는 2001년까지 총 78개의 스크린을 확보할 방침이다.

(주)대우의 움직임도 본격화돼 최근 서울 강남 무역센터 아셈컨벤션센터에 20개 스크린 규모의 「메가플렉스」운영권을 확보했으며 앞으로 부산, 대구, 인천, 제주 등에도 복합상영관을 건설, 2000년까지 1백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할 계획이다.

복합상영관은 지난 80년대에 미국에서 본격화됐으며 이후 유럽(80년대 후반), 일본(93년) 등으로 확산됐다. 스크린 수가 최소 8개 이상이기 때문에 20∼30분 간격으로 연속적인 영화관람이 가능하고 각종 부대시설을 구비, 쾌적한 도심형 오락, 문화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에서 이같은 복합상영관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다소 성급한 일로 보여질 수도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말미암아 지난 95년 이후 영화관객이 크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92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관객동원 1백만명 시대를 연 이후 단 한 편의 영화도 이 기록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도심형 오락, 문화중심지로 건설될 복합상영관은 TV, 비디오로 유인돼 안방에 안주하던 국내관객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 영화계의 전망분석도 일맥상통한다. 오는 2005년 전세계 극장수입이 약 2백20억달러(약 18조4백억원)로 추산되는 등 영화관 및 관객수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복합상영관이 본격화된 80∼85년 사이에 무려 3천5백57개의 극장이 새로 생겼다.

미국에서는 대형 영화메이저들이 각자 1백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기 위해 극장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등 현재 2만7천5백개인 스크린 수가 2001년에는 3만2천개로 증가할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의 경우에도 계속 감소하던 관람객수가 복합상영관 도입 이후 2배이상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복합상영관 건설은 영화제작 및 수입에 치중해온 대기업들에게 큰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그동안 한국의 영화제작업자 및 투자자들은 일부 몰지각한 영화배급업자들의 횡포에 시달려 왔다. 일부 영화배급업자들이 장기흥행의 조짐이 뚜렷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영 1주일을 채우지 않은 채 종영, 제작사와의 계약을 만료한 후 재개봉하는 방법으로 수익을 독식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좋은 영화가 배급업자들의 「흥행성이 없다」는 판단하에 개봉극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복합상영관이 등장할 경우 제작사가 극장까지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 안정적인 개봉관 확보는 물론 수익집계가 객관화될 수 있을 전망이다.

대기업들의 극장사업 진출로 중소 극장들의 위축 및 도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안락하고 편안한 영화관람문화」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