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한국IPC부도 6개월… 채무문제 해법 없나 (상)

올해 1월말. 한국IPC와 멀티그램의 부도가 난지 5개월 반이 지났다. 지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당초의 충격이 조금씩 잊혀져가고 있다. 그러나 채권자의 입장은 다르다. 회사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최근 신문에 광고를 내고 법적대응을 천명하고 나섰다. 지루한 장마보다 더 긴 싸움. 두원그룹과 멀티그램 채권단의 주장은 일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분석해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익명을 요구한 40세의 김모씨는 모 정보통신회사 차장이다. 입사 동기들은 이미 부장자리에 올라 중견간부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김씨는 입사 동기들의 지시를 받아야만 하는 하위직급에 머물러 있다. 올해 3월 승진인사에서 누락됐기 때문이다. 그도 지난해 말까지는 사내에서 촉망받는 인물이었다. 뛰어난 영업력과 부지런함으로 올해 부장승진 1호감이란 얘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그런 김씨가 승진인사에서 물먹게 된 이유는 올해 초 멀티그램의 부도때문이었다. 김씨가 팀장이 돼 거래하던 회사가 바로 멀티그램. 거래를 시작하고 대금결제를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채 30억이 넘는 부실채권만을 안았다. 멀티그램이 부도나기 약 2개월 전인 지난해 12월부터 집중적인 거래를 시작했기 때문에 3개월짜리 어음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사실 두원그룹을 믿지 않으면 어디를 믿고 거래합니까. 처음 거래하기 전에 멀티그램이 두원그룹 계열사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모든 근거가 확실했습니다. 심지어는 두원그룹 김찬두 회장이 정보통신회사로 멀티그램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인터뷰 기사까지 실린 것을 보고 더 이상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김씨는 멀티그램 부도로 인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2백∼3백명은 족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 채권단 사무실에 출근해 대책을 숙의하고 있다. 사실 김씨는 사표를 낼까하는 생각도 가졌었다. 그러나 직장동료들의 눈길과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사는 것이 두려워 악착같이 채권단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이에 반해 두원그룹측은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계열사가 아니라 단순 출자사인만큼 책임의 한계가 있다는 것이 변론이다. 따라서 채권단이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해올 경우 법대로 하자는 것이 두원그룹의 기본 입장이다. 멀티그램은 그룹출자사이기 이전에 개인회사이기 때문에 그룹측에서 변제의 이유가 없고 이를 해결하려 해도 회계상 까다로운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아직까지 검찰에 채권단의 고소장이 접수되진 않았다. 채권단은 늦어도 다음주내 검찰에 고소장을 낼 예정이다. 두원그룹측은 고소할 것 같으면 빨리해서 하루라도 빨리 입장정리를 종결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두원그룹측은 채권단과 일체의 접촉을 갖지 않고 있다.

두원그룹 종합조정실의 한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출자사는 상호 입보보증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변제의무가 없다고 이미 관련 법률을 해석해 놓은 상태여서 법적 대응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채권단은 『법률적인 해석을 일방적으로 내세워 결정짓기는 아직 이르다』며 『멀티그램이 두원그룹의 계열사란 근거를 확실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적대응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멀티그램 채권단과 두원그룹의 평화적인 협상은 이미 결렬됐다. 그리고 법정싸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채무변제, 그 늪에서 양자의 싸움이 뜨거운 7월의 태양만큼 격렬할 것으로 보인다.

<이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