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말콤 볼드리지賞

유동수 대우전자 품질경영연구소장

우리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을 보면 만들고 다듬어야 할 제도가 무수히 많다. 거액의 뇌물을 주고받고도 대가의 여부에 따라 유무죄가 판단되고 있으며 신분이나 직위에 따라 죄의 경중도 달라지고 있다. 규정이나 시스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활동영역을 묶어놓은 오랏줄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으며 몇몇 제도는 국민의 생활에까지 규제와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비단 법이나 정치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계도 제도가 미흡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떤 회사는 모든 일이 사장의 결재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또 다른 회사는 사장보다 사업부 책임자의 결재권이 커서 그가 엄청난 파워를 행사하기 때문에 업무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지기도 한다.

실제 선진국 회사들에서는 상품개발, 시설투자 등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으므로 합당한 근거와 절차를 거친 일들만 집행된다. 지금은 산업화 초기와는 달리 한 분야의 경험자가 모든 일을 진행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잘 정리된 시스템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제도나 시스템을 형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다가 또 보물상자인 모양 모셔 놓고 정비는커녕 부실화시키고 있다.

얼마 전 정부가 미국처럼 말콤 볼드리지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이 상은 미국에서 지난 87년 제정돼 국가경쟁력 향상에 기여한 기업에 상을 주는 제도로 일본의 데밍상을 본떠 만든 뒤 자신들의 실정에 맞게 크게 4번이나 개정하면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지난 75년부터 품질이 우수한 업체에 주는 TQC대상이 있다.

이 상은 미국의 말콤 볼드리지상(賞)보다 10여년이나 먼저 실시되었지만 시행과정에서 서류더미와 로비 등으로 얼룩져 흐지부지 되어왔다. 이밖에도 명장상, 소비자보호우수상, 품질 1백대 기업상 등의 많은 제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무실, 제대로 그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부실제도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더욱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면 기업이 신제품을 만들기 위해 들이는 노력처럼 몇년씩 점검하고 국부적으로 시행해서 부작용을 점검하고 보완한 후에 확대해야만 한다. 사회제도가 신모델 개발보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제도를 겨우 몇 개월 검토한 후에 시행하는 것은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법이나 제도, 시스템을 개정하려 한다면 개정의 근거를 더욱 명확히 해야하며 이것으로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 것인지 짚어야 하고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관계기관의 공무원수가 이 시스템으로 인해 줄어드는 것인지 늘어나는 것인지를 짚어야 하고 음성적인 피해는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

미국은 말콤 볼드리지상을 정착시키기 위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계속적인 보완을 거듭했다. 미흡한 하위체계의 제도는 계속 제정하고 지켜지도록 만들었으며 부실화된 제도는 그 사유를 밝혀서 차후 그렇게 되지 않도록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규제도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국민의 의견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정리해야 할 것이다. 제도의 혜택을 입을 몇사람만 불러놓고 공청회를 한두번하고 정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만든 큼직한 제도의 부작용을 점검해서 우리에게 가깝게 밀착시키는 일이 시너지를 고양시키는 더욱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