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말 이후 컴퓨터유통업계 연쇄부도의 상흔은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있다. 자금력이 취약한 영세업체는 줄줄이 부도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일부업체는 동반부도의 철퇴를 맞았다. 정부가 긴급자금 수혈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결과는 조족지혈이었다. 원인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불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몸부림이 뜨거웠던 지난 상반기였다.
부도의 끝에서 채권자는 채권회수가 우선이다. 채무자는 완전변제 능력이 없다. 이미 파산선고를 받은 것이다. 다소의 손해를 감수 하고라도 일정부분 채권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 채권자들의 기본 입장이다. 멀티그램 부도의 경우 채권단은 모회사인 두원그룹을 상대로 채권회수에 나섰다. 그러나 두원그룹은 계열사가 아닌 출자사이므로 변제의무가 없다는 결론을 자체적으로 내렸다. 물론 채권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미 평화적인 해결은 깨졌다. 또 단기간에 끝날문제도 아니다.
채권단은 신문광고를 통해 수차례 두원그룹의 비윤리성을 고발했다. 두원그룹도 반박광고를 냈다. 때아닌 광고전이 벌어졌다. 채권단은 설사 채권회수가 어렵다하더라도 두원그룹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낮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부도에 따른 기업의 도의적인 책임이 뒤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반응이 전혀 없다는 점에 더욱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지속적인 광고공세와 신문, 방송사 등을 찾아다니며 두원그룹의 비윤리성을 알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두원그룹은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강경대응태세다. 고의부도, 사기행각, 허위광고 등이 명예훼손에 해당된다며 강경조치를 취겠다고 나섰다.
누가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승자가 없는 무한대의 게임이 될 수도 있다. 따로 정전협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힘이 지치면 잠시 쉬었다가 또다시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장기전의 양상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다 보면 채권단도 두원그룹도 모두 지친다. 자금, 정력, 인력의 한계에 도달할 수도 있다. 두원그룹은 치명적인 이미지 훼손을 안게 된다. 한두번 비난의 말은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지만 하던말 또하는 식의 반복적인 비난은 실체를 만든다. 기업의 이미지는 생명과 같다. 이미지가 실추된 기업은 일류기업이 되기 힘든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한번 실추된 이미지는 회복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어쩌면 채권단이 주장하는 채무액 이상의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양자 모두 소비적 대립이다. 그렇다면 이 공방의 끝은 어디인가. 현재의 대립은 다분히 감정싸움이다. 상호 비난광고와 법정공방으로 비화된 만큼 법률적 해석은 또 다른 빌미를 제공한다. 채권단에게는 개인의 생산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두원그룹은 불매운동으로 빚어진 매출손실과 치유될 수 없는 이미지 훼손을 안아야만 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사건의 장기적인 결말은 서로의 피해다.
어느 한 기업인은 『사업가에 있어 부도는 곧 죽음이다. 따라서 사업은 곧 死業이다. 어떠한 경우든 무슨 수를 쓰든 부도는 막아야 한다. 부도는 개인의 멸망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동반해 늪으로 빠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부도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루에도 수십개의 업체가 문을 닫는다. 부도는 피해자를 동반한다. 번창하는 사업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깨끗한 부도처리 역시 요구되는 이 시대가 아이러니이다.
<이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