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기술과 같은 소프트웨어 회사를 만들고 싶다.』
최근 벤처기업을 설립한 몇몇 젊은 사장들의 말이다. 96년 매출액 40억원, 직원수 60명, 국내 소프트웨어업계에서 기업규모 10위권. 나눔기술의 명세서다.
내용상으로 알차기는 하지만 한글과컴퓨터, 핸디소프트 등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니는 국내 정상급 소프트웨어업체들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나눔기술을 모델로 생각하는 벤쳐기업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벤처기업이란 단어가 원래 모험기업을 의미하지만 모험을 불사한다고 다 벤처기업이 아니다. 진정한 벤처기업은 모험적인 요소에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를 갖고 기존 기업들과는 다른 창의적 도전정신을 갖고 있는 기업을 말한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나 넷스케이프가 성공적인 벤처기업으로 꼽히는 것도 직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바탕으로 기술경쟁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벤처기업들이 나눔기술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창의력과 도전정신을 잘 조화시켜 나가는 데 있다.
대다수 벤처기업들이 그렇듯 나눔기술도 90년 10월 20대 초반 젊은이들 3명이 서울 성북구 삼선동 상가 한 모퉁이에서 5천만원의 자본금을 갖고 (주)정보와기술나눔이란 이름으로 출발했다.
3인의 창업멤버 가운데 하나인 장영승 사장은 『자본금조차도 빚으로 끌어온 것이어서 기술에 대한 자부심 빼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으나 그래도 기술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전직원이 매일 새벽까지 연구하며 프로그램을 짰다』고 밝혔다.
창업 후 기업으로서 나눔기술이 처음으로 했던 일은 고객의 주문을 받아 경영정보시스템(MIS)을 개발해주는, 소위 벤처기업으로서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작업이었다. 당시 수입으로는 회사를 꾸려가기에도 힘이 들었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투자로 네트워크와 데이터베이스분야에 대한 기술력을 축적해갔다.
나눔기술이 컴퓨터업계의 주목을 받은 계기는 92년 6월 한국컴퓨터, 소프트웨어전시회(SEK)에서 「나눔 OISA(Office Integration System Architecture)」란 제품을 내놓으면서부터. 컴퓨터로 전자결재 문서에 도장이 찍히는 것을 보고 관람객들은 물론 쟁쟁한 소프트웨어업계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 당시로서는 국내는 물론 미국의 로터스 같은 세계적 소프트웨어업체도 생각지 못한 제품이었다. 나눔기술은 이 제품을 바탕으로 93년 한국형 그룹웨어 「워크플로」를 발표, 핸디소프트와 함께 국내 그룹웨어시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로 떠올랐다. 워크플로 고객은 현재 현대중공업, 한미은행, 충남대학 등 약 1백개로 증가, 국내 그룹웨어시장을 명실상부하게 주도하고 있다.
나눔기술은 올들어서도 울산, 부산 등과 대규모 그룹웨어 도입계약을 체결, 80억원의 매출목표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창업 이후 해마다 1백% 이상의 성장률을 이룩하겠다는 목표가 올해도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나눔기술은 특히 지난해 매출대비 순익증가율에서 1만2천4백%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 국내 벤처기업 가운데 수익성이 가장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나눔기술의 진정한 강점은 이같은 고속 성장률을 기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의 융화력을 바탕으로 기술흐름을 면밀히 분석, 미래의 변화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자세와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강력한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 때문에 나눔기술과 경쟁관계에 있는 소프트웨어업체들이 『다른 회사는 모르겠는데 나눔기술과 경쟁은 웬지 부담스럽다』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 이 회사의 저력을 인정한 셈이다.
나눔기술은 지난 5월 중소기업용 인터넷 서비스인 「소호넷(SOHONet)」과 인트라넷 패키지 「스마트플로」를 발표하면서 또다른 기업변신을 시도했다. 이 두 제품은 자사기술과 95년 인수한 미국 전자문서교환(EDI) 전문업체인 DGC의 기술을 융합, 그룹웨어, 인터넷, 전자상거래(EC) 등 3개 분야 주도권을 장악한다는 전략을 구체화한 것이다.
나눔기술이 항상 승승장구해왔던 것은 아니다. 『우리말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갖고 94년 한글 프로그래밍 언어 「씨앗」을 개발했지만 상업적인 면에서 참담한 실패를 겪어야만 했다. 그 어떤 소프트웨어보다 안정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아직 병아리에 불과한 벤처기업이 개발한다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영승 사장은 이에 대해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모를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우리 직원들이 그만큼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장 사장은 상업적으로 실패하기는 했지만 씨앗 개발에 들어간 노력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 뛰어들 정도로 기술력을 갖고 있는 기업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사용자들에게 심어줬을 뿐만 아니라 한글처리 부문에서 상당한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한 한글검색엔진도 씨앗 개발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력이 없었다면 그렇게 쉽게 나오지는 못했으리라는 것이 장 사장의 설명이다.
나눔기술은 올해 직원을 80명으로 늘리고 매출목표도 80억원으로 높여 잡았다. 지난해보다 1백% 이상 늘어난 매출목표이지만 회사 내부적으로는 1백억원의 매출달성도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영업수주가 활발한데다 EC, 인터넷 등 올 신규진출 분야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성장속도가 유지된다면 나눔기술은 오는 2000년대에 그룹웨어, 인터넷, EC분야에서 5백억원의 매출액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나눔기술은 이같은 수치적 목표달성에 만족하지 않고 5백억원 매출이 달성되는 해에 국내는 물론 세계 정상급 소프트웨어업체로 거듭난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워놓았다.
<함종렬 기자>
[인터뷰] 나눔기술 장영승 사장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일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소프트웨어 기술을 나눠 가져 사용자들이 좀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자는 게 회사설립 목표였지요. 지금도 나눔기술에서는 기술보다는 사람 중심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장영승 나눔기술 사장(34)은 첨단 벤처기업 경영자답지 않게 기술보다는 사람이 경영 중심에 있음을 강조했다. 장 사장은 둥글둥글하고 수더분한 외모 덕분에 요즘 잘나가는 첨단 벤처기업 사장이라기보다는 맘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준다. 사람 중심의 기업육성이라는 이념이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는 신뢰성을 주는 것도 장 사장의 친화력 있는 인상 때문일 것이다.
『90년 친구들과 함께 서울 삼선동의 상가 하나를 빌려 (주)정보와기술나눔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요. 자본금 5천만원의 법인이었지만 직원이 사장을 포함해 3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자본금도 법인등록을 위해 잠시 빌려온 것일 뿐 가진 것이라고는 미래에 대한 꿈과 기술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막연한 꿈밖에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창업 5년여 만에 한국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업체로 성장한 나눔기술도 여타 벤처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초라하게 시작했다. 설립 이후 전직원이 밤잠을 설치며 연구개발에 전념한 결과 직원 80여명에 매출액 1백억원 달성이 목전에 이르렀다.
『한국방송위원회(KBC) 심의업무 전산화가 기업으로서 실적이지만 92년 SEK92 전시회에 「나눔 OISA」란 소프트웨어를 발표한 것이 업계에 비로소 명함을 내밀게 된 계기가 됐죠. 나중에 이 제품을 확장 발전시킨 것이 현재 저희 회사의 주력제품인 그룹웨어 「워크플로」입니다. 그룹웨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면 수작업이나 출장 등 비능률적인 작업이 감소하게 돼 기업들이 창조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워크플로는 국산 그룹웨어로서는 처음으로 컴퓨터환경에서 서명이나 인장까지를 인식 처리할 수 있는 전자결재 환경을 구현한 제품으로 나눔기술이 탄탄한 소프트웨어 개발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얻게 해준 출세작. 이 제품 하나로 나눔기술은 당장 국내 그룹웨어시장의 선두로 부상했다.
『의욕적으로 개발했던 한글프로그래밍 언어 「씨앗」이 국내 개발자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은 게 가장 쓰라린 기억입니다. 하지만 어떤 소프트웨어업체들도 갖지 못한 소중한 경험을 축적했다는 점에서 이 제품은 결코 실패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려웠던 순간을 담담하게 설명하는 장 사장의 얼굴은 사뭇 결연한 표정이 역력하다. 수십명 직원을 거느린 업체의 대표로서 단 한순간이라도 실수하면 안되겠다는 각오 때문일 것이다.
장영승 사장은 끝으로 『기업의 최대 자산은 회사 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직원들』이라며 『최대 관심사인 사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력 축적에 앞으로도 계속 역점을 둘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함종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