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12)

뿌- 뿌- 뿌-.

디주리두 소리가 짧게짧게 이어졌다.

사내는 리모컨의 버튼을 눌러 화면을 정지시키고 밖의 정황을 살폈다. 카메라의 방향이 종로 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직도 연기가 솟구치는 종로 쪽의 맨홀.

그 맨홀 속으로 소방관들이 관창을 들이대고 물을 쏟아붓고 있었다. 시청 앞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도 이제는 관심이 없는 듯 대부분 자리를 떴다. 사내는 카메라를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옮겼다. 광화문 네거리. 처음 화재가 발생한 광화문 네거리에는 이제 소방차 대신 통신복구 차량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케이블을 가득 실은 통신복구 차량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부분적으로 일반 차량의 통행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사내는 다시 리모컨을 조작하여 화면을 바꾸었다.

천정 전체를 가득 채운 대형 모니터. 그 화면으로 다시 춤을 추고 있는 파리떼들이 클로즈업되었다.

파리는 모든 인간의 혐오대상 가운데 하나이다. 그 혐오의 이유는 무엇보다 그 불결함에서 기인한다. 그 불결함은 부패를 연상시키며 부패는 악취와 더불어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요소는 파리에게는 생존이다. 누가 뭐라 해도 배가 터진 채 길가에 널브러져 있는 쥐의 창자에 애벌레를 분만하는 것은 그들의 종족보존을 위한 생존의 과정일 뿐이다.

뜨거운 태양열 아래 악취는 코를 찌르고 썩어가는 쥐 창자 속에는 구더기가 들끓는다. 누가 보아도 욕지기를 자제할 수 없는 광경. 인간의 배설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채 마치 향연이라도 벌이듯 즐겁게 꿈틀대는 허옇고 통통한 구더기떼.

심지어는 인간의 깁스 안에까지 보금자리를 만드는 구더기, 파리의 애벌레의 그 놀라운 침투성과 번식력, 어느 곳에라도 사뿐히 내려앉아 그 털 많고 끈적이는 다리에 온갖 오물을 묻혀 여기저기에 묻히고 다닌다.

불결함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인간에게는 불결하고 파렴치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생존의 과정일 뿐이다. 연신 앞쪽 두 다리를 닳아빠지도록 부벼대는 파리. 결코 그것은 인간에게 용서를 비는 모양이 아니다. 파리의 손에 묻은 불순물을 계속 털어내고 있을 뿐이다.

자신들의 부패를 외면한 채 자신들에게 살충제나 뿌려대고 있는 인간들, 날마다 잡아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인간에 대한 파리의 자부심.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섹스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