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의 반도체사업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주력제품인 16MD램은 공동감산으로 인해 판매를 자제해야 하는 입장이고 64MD램은 아직 수율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골치다.
물론 D램 가격 폭락으로 시장이 가뜩이나 어려워진 환경에서 상황이 어렵기는 삼성과 LG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삼성은 아직까지는 부가가치가 높은 64MD램 시장을 선점하고 있고,LG는 히타치에 대한 OEM공급으로 그나마 숨통을 트고 있는데 반해 그 어느 하나 기댈 언덕이 없는 현대가 느끼는 고충은 상대적으로 클 수 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현대는 「리스크가 큰만큼 이익도 크다」는 메모리투자의 속성에 충실해왔고 실제 이로 인해 4MD램 시절에는 짭짤한 재미를 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철저하게 경기가 호황인 시절에나 빛을 발할 수 있는 대목이고 요즘같은 상황에서 D램에만 주력,포트폴리오를 갖추지 못한 현대의 스타일은 마냥 앉아서 손해를 봐야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빠지기 십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대의 어려움은 재고상황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본업체들과 삼성,LG가 보통 한달치 정도의 재고를 안고 가고 있는 반면 현대는 두달치 가까운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의 감산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이같은 재고상황은 한층 악화될 수 밖에 없고 이는 현대에게는 가장 큰 경영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내외 업계가 10월 이후 예상되는 대만업체들의 본격적인 D램 증산,그리고 월 3천만개 이상씩 생산하는 美마이크론社의 물량 쏟아내기에 맞서 「반도체 大戰」을 일으킬 수 있는 또다른 주역으로 현대를 꼽는데 주저치 않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
이럴 경우 최근 일부 스팟시장에서 6달러 이하에서 거래되는 16MD램의 가격은 더욱 떨어져 업체마다 수익구조가 최악에 이르게 되겠지만 「출혈전쟁」을 통한 시장구조 개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현대 입장에선 아직 반덤핑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모험을 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현대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악재는 반도체업체에게는 경쟁력의 원천이며 생명이나 다름없는 수율. 작년 5월 16MD램 양산과 관련해 한차례 곤욕을 치뤘던 현대가 요즘은 64MD램 수율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는게 업계 소식통들의 중론이다. 현대 이천공장의 한 임원은 『수율이라는 것이 어느 한순간 원인이 해소되면 수직상승하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않고 있다』며 10월 이후에는 계획대로 64MD램의 본격양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전문가들은 현대의 64MD램의 생산이 경쟁업체들에 비해 2∼3개월 뒤떨어지고 있는데다 10월 이후에도 정상화를 낙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로부터 『반도체사업이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받는 현대가 4MD램 시절 빛을 발했던 특유의 승부근성을 또 다시 발휘해 이 난국을 얼마나 빨리 극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삼성,LG와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온 현대가 약화되는 것은 국내 반도체산업에도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김경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