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P/IP의 대명사 「퓨쳐/TCP」.
국내 네트워크업체들은 최고의 TCP/IP 제품을 꼽으라는 질문에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서너개 제품이 다투고 있는 국내 TCP/IP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퓨쳐/TCP라는 답이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TCP/IP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ftp소프트웨어도 국내에서만은 퓨쳐/TCP에 한 수 뒤지는 상황이다. 이 제품의 국내 사용자는 현재 1만여개 기업에 달한다.
네트워크 전문업체인 퓨쳐시스템은 이 퓨쳐/TCP로 스타덤에 오른 벤처기업이다.
퓨쳐시스템의 지난해 매출과 순익은 각각 92억원과 12억원. 이 정도면 짭짤한 마케팅을 했다는 평이다. 이 가운데 「퓨쳐/TCP」가 벌어들인 금액은 40억원. 효자소리를 듣기에 충분하다.
네트워크상에서 데이터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TCP/IP는 네트워크컴퓨팅 시대에 없어서는 안될 「감초」다. 따라서 TCP/IP를 개발, 공급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일단 잘 만들어놓으면 성공의 보증수표가 되기 때문이다.
90년대 들어 ftp소프트웨어 등 업체들은 네트워크에 막 눈을 뜨기 시작한 국내시장에 일찌감치 제품을 들여와 영역을 확보했으며 현재도 퓨쳐시스템과 시장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TCP/IP 커널을 탑재한 윈도95를 발표, TCP/IP 업체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마이크로소프트도 간접적인 경쟁상대로 떠올랐다.
벤처기업인 퓨쳐시스템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업체로는 유일하게 TCP/IP 격전장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 분야 시장을 장악하는 개가를 올렸기 때문이다.
모든 벤처기업이 그렇듯 퓨쳐시스템 역시 자본보다는 기술과 개발력에 승부를 걸고 있다. 한가지 다른 점은 정보통신 분야의 흐름을 읽어내는 분석력과 판단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데 있다. TCP/IP를 보는 눈이 남달랐다는 얘기다.
퓨쳐시스템이 세워진 것은 지난 87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들이 모인 퓨쳐시스템은 이후 3, 4년 동안 X윈도 한글화 및 X터미널 개발 등 유닉스환경을 PC에 접목하는 일에 치중했다.
TCP/IP의 중요성과 시장성을 깨닫고 퓨쳐/TCP 개발에 나선 것은 지난 91년. 퓨쳐시스템은 정보통신 분야는 네트워크가 지배하고 이 네트워크를 좌우하는 것이 바로 TCP/IP라는 것을 일찍이 간파한 셈이다.
이와 관련, 퓨쳐시스템 김광태 사장은 『한 분야에 몰두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그 분야의 흐름이 읽힌다』고 말한다.
특히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벤처기업의 경우 그 본능은 더욱 강하게 작용,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는지가 눈에 잡힌다는 설명이다.
퓨쳐시스템은 유닉스 계통으로부터 TCP/IP를 사업 아이템으로 끌어내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던 것이다.
그러나 벤처기업이 신념을 가지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에는 80년대 말, 90년대 초 국내환경이 터무니없이 열악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회자되는 얘기다. 자금조달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퓨쳐시스템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퓨쳐/TCP를 개발하고도 판로가 형성되지 않았던 92년 말 부도위기에 놓였다. 김 사장은 퓨쳐시스템의 매각에 나섰다.
그러나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는 행운(?)을 누린 퓨쳐시스템은 그 이듬해 불어닥친 네트워크 구축 열기를 타고 퓨쳐/TCP를 무섭게 팔기 시작했다.
그 후 95년까지 3년 동안 매년 두 배로 몸집을 부풀렸다. 기술력과 분석력, 미래예측력이 빛을 본 나날이었다.
퓨쳐시스템은 곧바로 네트워크 분야에 집중 투자했다. 지난 93년에는 중대형컴퓨터와 단말기를 연결하는 에뮬레이터 3270.5250.6680 시리즈를 개발했으며 94년에는 원거리통신망(WAN)인 X.25 네트워크에 쓰이는 「퓨쳐/X.25」 카드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또 지난해에는 팩스, 프린터서버 「오픈서버」와 윈도95용 통합에뮬레이터 「오픈호스트」 등을 선보였다.
거의 1년에 한 제품씩 만들어낸 셈이다. 이들 제품은 모두 퓨쳐시스템을 「황금의 손」으로 불리게 했다.
퓨쳐시스템을 성공한 벤처기업의 지위에 오르게 한 퓨쳐/TCP는 93년 국산신기술(KT) 인정마크를 획득했으며 94년에는 한국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 우수상을 차지했다. 「퓨쳐/X.25」 역시 KT마크를 달아 지금까지 전국 2천5백여 읍, 면, 동사무소의 행정전산망에 쓰이고 있으며 「TN/3270」은 전국 세무서에 1만1천여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퓨쳐시스템에도 고비는 있었다. 지난 9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용체계인 윈도95에 TCP/IP 스택을 실어 내보냈던 것이다. 비록 간단한 통신기능만을 제공하는 TCP/IP 스택이었지만 TCP/IP를 주종목으로 삼고 있던 퓨쳐시스템에 이 사건은 위기로 작용했다.
퓨쳐시스템은 부가가치 전략으로 이에 응수했다. 결국 퓨쳐시스템은 TCP/IP에 바이러스 치료, FTP, 텔넷, 전자우편 및 소프트웨어 자동업그레이드 등 각종 기능을 추가, 이를 극복했다.
퓨쳐시스템은 최근 부가가치 종목에 보안기능이 탑재된 TCP/IP 4.0 버전을 개발하고 상품화에 나섰다. X.25 네트워크를 해커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는 장비도 개발했다. 보안 분야로 사업방향을 튼 것이다.
이 역시 정보통신 분야의 흐름을 파악한 결과다. 컴퓨터시대에서 네트워크시대로, 그 다음은 보안이 중요 관심사인 시대로 정보통신 환경이 이동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정보통신부가 유망 중소정보통신기업으로 선정한 퓨쳐시스템을 무엇보다 돋보이게 하는 것은 미래를 꿰뚫는 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퓨쳐시스템은 2, 3년 후를 그려보며 어떤 제품을 만들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벌써 생각을 정리했는지도 모른다.
[인터뷰] 퓨쳐시스템 김광태 사장
『91년 퓨쳐시스템이 TCP/IP를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때 주위에서는 「무엇 때문에 개발하려 하느냐」고 했습니다. 외국업체가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데 굳이 어렵게 개발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었죠. 한마디로 사업성이 없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퓨쳐시스템 김광태 사장은 실제로 그 때는 기술인력마저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한다.
『TCP/IP 시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제 나름의 판단도 작용했습니다만 젊어서 쉽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지난 87년 세워진 퓨쳐시스템이 90년대 들어 기술용역사업을 그만두고 TCP/IP 사업에 뛰어든 후 고속성장을 구가했던 것이다.
『기술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벤처기업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가 맞아야죠. 그런 점에서 80년대 말 설립된 벤처기업은 운이 좋은 편입니다. 그 때 정보통신 분야에 뛰어든 기업들은 국내 정보통신시대의 개화기부터 참여, 현재 안정된 길에 접어들었으니까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정보통신 분야의 조류를 제대로 타기가 그 때보다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시대의 흐름을 앞질러갈 경우 성공가능성은 거의 1백%라는 뜻이다.
김 사장은 이와 함께 벤처기업이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마케팅 능력을 꼽는다. 벤처기업도 이제부터는 체계적인 마케팅전술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을 어떻게 사업으로 연결시키느냐도 관건입니다. 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군데군데 위치한 부진의 골을 타고 넘어야 합니다. 이 ㄸ 중요한 것은 개발에서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소비자층을 단계별로 면밀히 분석, 호흡을 같이 하는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사장은 90년대 초 미국 벤처기업의 경영기법을 이론화한 「벤처 마케팅」이란 책자를 소개하며 퓨쳐시스템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가야 할 길을 정하는데 도움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올해를 제2의 도약의 해로 정하고 「퓨쳐시스템 변화시키기」에 나섰다. 마케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개편을 단행한 데 이어 성과급·능력급에 바탕을 둔 연봉제를 도입했다.
퓨쳐시스템의 개발인력은 업계에 정평이 나있다. 현재 직원 76명 가운데 연구소 인원은 32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최근에는 한국과학기술원·포항공대 등에서 박사 3명을 추가로 영입, 20여명의 석사들을 지휘하게 했다.
김 사장은 『모든 일은 사람이 합니다. 특히 신규사업에 진출할 때 인력확보는 무엇보다 고려돼야 할 사항입니다.』라며 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일주 기자】